소용

문득 잊고 지내던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며 생경하기만 한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필연적으로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그를 보며 겸연쩍음을, 부끄러움을, 때로는 대견함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 며칠 간 유독 그런 순간이 많아, 아예 곳곳에 남겨놓은 글들을 읽으며 좀 더 본격적으로 과거의 나를 만나봤다. 그러다가 댓글로 남은 과거의 타인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글 안에 포개어진 나 자신의 옛 생각과 감정보다도 반가웠다.

최근 들어 글을 쓰는 게 무용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많은 글을 써왔지만 내면 깊은 곳의 무언가를 들추어내기에는, 또 타인에게 가닿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통해 과거의 나를, 또 과거의 타인을, 그렇게 비로소 과거의 우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글을 남기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