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물리학에 기반을 둔 시간의 실재에 관한 탐구.

원제(<The Order of Time>)를 직역하면 <시간의 질서>쯤 되는 이 책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소극적 주장을 넘어, 시간이란 건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온 우주를 가로지르는 동시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은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른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시간은 관점 의존적이다. 여기까지는 쉽게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간', 곧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친다. 물리학의 기초 방정식들은 시간의 방향을 전제하지 않는다. 엔트로피의 증가만이 시간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이때,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계에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이를 시간의 흐름이라고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 엔트로피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특정한 계에 국한되는 것일 뿐이다.
그가 전달한 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시간의 객관적 실재를 거부하는 이와 같은 논증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우선 관점 효과, 곧 우리가 어떤 특정한 계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너무 과도하게 빠져든 것 같다. 어떤 지식들은 물론 우리 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지식을 우리 인식 능력 바깥에 있는 어떤 계를 상정함으로써 거부한다면, 지식이란 것이야말로 도대체 존재할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계가 존재한다고 상정하기 시작한다면 물리학의 어떤 법칙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엔트로피의 증가를 시간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관해 논해보자. 사실 이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공간'은 '입자들 간에 성립하는 상호 작용들의 네트워크'이다.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것의 실체를 규정한다. '시간의 흐름'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사실 엔트로피의 증가를 일관된 현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불어 현상을 규정짓는 게 이상하지 않다면 지금 앞으로의 마지막 반론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어쨌든, 엔트로피의 증가를 시간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특정 계에 한정되어 일어나는 진화에 따른 체계적 오류라고 가정하는 것 역시도 어불성설이다. 만약 그런 가정을 받아들일 경우, 원칙적으로 이 세상에 일관되게 존재하거나 작동한다고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의 허무를 증명할 수 있다. 심지어는 '하나'라는 개념 역시 실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 있을 텐데, 물론 이 반박이 형이상학적 또는 수리철학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와 관련한 재반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책에서 저자가 시도하는 논증은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와는 별개로, 물리학의 입장에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볼 기회를 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또 그 살펴봄에 있어 대중적인 독자도 이해할 수 있게끔 쓰여 있다는 점에서 좋게 평가하고 싶다. 양자 얽힘으로 동시성을 규정할 수는 없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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