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견문록

한국인이라는, 또 한국과 한국어를 잘 안다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아비트리지가 영어 소통의 어려움, 문화 차이 등에서 발생하는 역(逆)-아비트리지를 상쇄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일 수도 있다.

싱가포르 견문록
Photo credit: Damien Paeng

9월 28일부터 10월 3일, 4박 6일 일정으로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내가 가본 스무 곳이 넘는 나라 중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이런 진지한 고민을 촉발시킨 나라는 처음이었다.


1. 아비트리지를 발생시키는 건 호기심과 관찰력이다.

최근 '아비트리지'라는 말에 꽂혀 있다. 본디 이 단어는 '시장 사이의 가격 차이를 활용해 무위험으로 차익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데, 나는 '남들은 모르는 것, 남들에게 없는 것을 내가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음으로써 생기는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

지금까지는 아비트리지의 기회가 이미 존재하는 곳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가령 창업 경험과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살려 학생들을 대상으로 린스타트업 스터디를 운영해 본다든지, 직접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어 볼까 고민해 본다든지.

반면 이번 여행에선 '아비트리지를 어떻게 발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여행 중 싱가포르에서 헤지펀드에 다니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자신이 일전에 어떻게 숏 포지션 기회를 포착했었는지 꽤 자세히 설명해줬는데, 결국 호기심과 관찰력이 핵심이었다. 이 회사는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고 있는 위험 요소는 무엇인가, 과거에 그 위험이 실현됐던 적이 있었는가 등. 결과론일 수 있지만, 그 친구의 호기심과 관찰력은 거대한 이익을 낳았다.

<셜록 홈즈>에 이런 말이 나온다: "You see, but you do not observe."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비트리지는 어디에나 잠재되어 있다. 시장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도 그렇고, 사람의 인생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도 그렇다. 호기심 어린 태도로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면 기회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다.


2.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비트리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싱가포르를 돌아다니며 한류가 실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K-Pop, 인생네컷 유의 사진관, 명품 브랜드의 한국인 모델까지.

마지막 대목을 특히 더 곱씹어 보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5~10년 전보다 아시아 지역 명품 매장에서 동양인 모델이 보이는 빈도가 더 높아졌음을 느낀다. 그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직관도 있다. (물론 접근성 편향일 수도 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갈라파고스가 되어 버린 한국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美)의 경쟁적 추구가 한류를 배태하는 것 아닐까? 거기서 K-Beauty가, 또 K-Pop이, 더 나아가 식문화 등을 포괄하는 K-Culture 전반이 파생되는 것 아닐까?

위의 직관과 가설이 참이라면 당분간 K-Culture의 파급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이 동질적인 성원들로 이루어진 섬나라인 한 K-Culture를 낳는 무한 경쟁은 끊임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한국인이 추구하는 미의 기준은 끝없이 높아질 거고, 그 기준은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즉각적 쾌감을 주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말초를 자극하는 콘텐츠는 광섬유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테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5~10년간은 한국의 독특하고 경쟁적이고 자극적인 문화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충분히. 그리고 만약 이 모든 추론이 건전하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인이라는, 또 한국과 한국어를 잘 안다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아비트리지가 영어 소통의 어려움, 문화 차이 등에서 발생하는 역(逆)-아비트리지를 상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을 쓰고 수정하는 동안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 이 또한 흥미롭다.)


3. 외국 진출, 지금인가?!

종합했을 때, 다가올 5년 정도가 외국 진출의 가장 적기가 아닐까 싶었다. 장기적으로는 영어가 큰 장벽이 되지 않는 어느 시점이 오기야 오겠지만 - 기술에 의해서든 노력에 의해서든 - ,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 내가 외국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아닐까 하는 고양감과 위기감을 지울 수 없었다.

외국 진출은 이기나 지나 즐거운 싸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이런 열망에 더욱 불을 지폈다. <머니볼>을 보고 생긴 최근의 화두는 '승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승부에 뛰어드는 것'.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해 본 내게 외국 진출이야말로 그런 승부가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