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궁금하다>
미학적 묻고 답하기를 위한 교보재
미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으레 받는 질문이 있다. 미학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이 그것이다. 이를 훌륭하게 대답해내기 위한 충분한 미학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가진 파편들을 대중의 수준에서 풀어내기에는 그 능력이 수준에 미치지 못해 애를 먹고는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에 관해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미학은 미와 예술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다루는 학문으로서, ‘묻고 답하기’와 필연적으로 결부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설령 훌륭한 답을 낼 수 없을지언정, 어떻게 하면 좋은 답을 낼 수 있을지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이 미학도로서의 책무이자 미학도가 지는 굴레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무는 철학적 사유를 다루는 학문이 가지는 그만의 성격이자 특권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다른 학문과는 달리, 모르면 모른다고 고민을 멈추는 순간 철학은 멈추기 때문이다.
특권이자 굴레인 이 책무가 버거워지려던 찰나에 알게 된 마거릿 P. 배틴의 <예술이 궁금하다>는, 그런 의미에서 반갑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다. ‘퍼즐과 함께하는 미학산책’이라는 부제를 지녔듯, 이 책은 미학의 핵심적인 문제들에 다가설 수 있게 하는 비교적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퍼즐 사례들을 제시하고 이에 관해 고찰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가 어떤 것을 묻고, 그 질문들을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며, 가능한 답변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알게 되는 것은 묻고 답하기를 영원히 멈출 수 없는 ‘미학 시지프스’에게 반가운 일이었다.
필자가 그 굴레로부터 조금이나마 해방됐는지는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한 후, 결론 부분에 제시하도록 하겠다. 앞으로 필자는, 필자가 기대한 위와 같은 부분에 기대어 이 책의 내용과 형식을 소개하고,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을 따로 짚어낸 뒤, 그럼에도 남는 아쉬운 부분들을 말하고자 한다.
배틴의 문제의식은 지금까지의 미학 교육이 이론 중심이라는 데에 있다. 그에 따르면 미학 교육은 교수자가 미학 이론을 먼저 설명하고, 그 이론을 강화하는 개별 예술작품을 사례로 들고 와 적용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해당 이론의 이해를 돕지만, 설명을 위해 채택되는 사례는 오직 해당 이론을 강화하는 데에만, 반증되는 사례는 오직 해당 이론을 폐기하는 데에만 사용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배틴은 미학적 딜레마를 담은 사례, 즉 ‘퍼즐 사례’를 먼저 제시하고 이 퍼즐 사례를 풀기 위해 적용될 수 있는 둘 이상의 이론을 듦으로써 이들 각각의 장단점을 고려하도록 교육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퍼즐을 먼저 제시하고 이 퍼즐을 푸는 데에 쓰일 수 있는 여러 이론을 소개해 함께 고찰해보게끔 하는 그의 책은, 예술과 예술작품이라는 미학의 기초적인 논의부터 미와 추, 미적 경험, 작품의 의미와 해석, 창조, 예술 및 이와 관련된 여타 가치, 그리고 비평적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기존의 미학 교육에 대한 반동을 계기로 쓰인 책인 만큼, 그의 책이 주제를 서술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일례로 그가 1장 ‘예술과 예술작품’을 풀어내는 방식을 소개하겠다. 보통 ‘예술과 예술작품’을 설명하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샤를 바뙤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체계와 개념이 자리 잡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제시하는 통상적 저술에 반해, 1장은 침팬지가 그린 작품들이 진정 예술이라고 칭해질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 곧 퍼즐 사례로 열린다. 이어서 그는 몇 가지 퍼즐 사례를 더 제시한 뒤, 우리가 예술을 적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일상적 문제를 말한다. 만약 어떤 고등학교 예술 교사가 요리, 스케이팅, 점성술 따위를 가르친다면 이것을 문제 삼아야 하는가? 이렇게 퍼즐 사례들과 이를 풀지 못했을 때 생기는 문제를 소개한 배틴은, 예술의 정의에 관한 본질주의, 반본질주의, 반반본질주의를 소개한다. 본질주의란 예술의 본질을 발견해 이를 통해 예술의 정의를 구성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반본질주의는 예술에 있어 공통되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고, ‘예술‘이라는 용어는 언제든지 그 적용 조건이 고쳐질 수 있는 열린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런 반본질주의에 대응되는 반반본질주의는 예술계를 통해 예술을 정의하고자 하는 디키의 주장으로 대표된다는 것이 그의 소개이다. 그는 이어 예술작품의 존재론, 곧 예술작품은 언제 또 어떻게 성립되는지에 관한 이론들을 소개한 다음, 이 이론들을 적용해 고찰해볼 수 있는 퍼즐들을 제시한다.
2장에서 5장까지는 1장과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반면, 6장 ‘비평적 판단’은 리처드 세라의 조각품 <기울어진 호>에 관한 논쟁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기울어진 호>에 관한 이 퍼즐 사례는 1985년 3월 뉴욕 시에서 열린 공청회 회의록을 인용하여 <기울어진 호>의 작가인 세라부터 미술사가, 뉴욕 현대미술관의 조각부 디렉터, <기울어진 호>가 위치한 페더럴플라자 광장 근처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까지 실제 이 작품과 삶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담고 있다. 이 퍼즐은 비평적 판단에 관한 것이지만, 비평적 판단은 예술이 무엇인지, ‘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기울어진 호>와 같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야 마땅한지, 작가의 의도는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며, 이와 유관한 예술적 가치가 여타 가치를 압도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이고 메타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지금껏 소개된 퍼즐 사례들과 이에 관해 답을 내기 위해 제시됐던 이론들, 그리고 퍼즐 사례들을 풀기 위해 천착하며 얻어온 깨달음들이 어떻게 한데 모여 작동하고 이로써 현실과 맞닿게 되는지 알게 된다.
이렇듯 <예술이 궁금하다>는 그 형식이 참신하고, 미학의 핵심 주제들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부단히 던져주며, 종국에는 이를 비평적 판단이라는 주제 하에 성공적으로 매조짓는 책이다.
이 책을 소개함에 있어 이 책에 담긴 지리한 이론들을 제시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 책의 형식 그 자체, 즉 퍼즐 사례가 장의 극초반부에, 그리고 장의 마지막에 제시됨으로써 각각 중반부에 소개될 이론들에 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소개된 이론들을 독자 스스로 고찰해볼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 될 테니 말이다. 따라서 나는, 각 장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퍼즐들을 하나씩 뽑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1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퍼즐 사례는 ‘1.20 미적 등가물‘이다. 이 퍼즐에서는 칸딘스키의 수채화 그림과 정확히 등가인 음악작품을 완성했다는 작곡가의 주장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어떤 시인이 자신의 소네트에 관하여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가정했을 때 작곡가와 시인 중 더, 또는 덜 정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만약 두 주장 모두 정당화된다면 이는 작곡가의 음악작품과 시인의 소네트가 정확한 등가물임을 의미하는지 물음이 제기된다. 이 퍼즐이 유독 흥미로웠던 이유는, 미술사적 맥락에서 칸딘스키 자신이 온 우주에 내재한 수적 조화를 자신의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추상화를 고안하고 발전시켰으며, 같은 목표를 음악적으로 갖고 있던 쇤베르크와의 예술적, 정신적 교류가 잦았다고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퍼즐을 만나 자연스럽게 쇤베르크와 칸딘스키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상향에 도달했다고 가정한다면, 둘의 작품을 등가물로 간주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2장 ‘미와 추, 그리고 미적 경험’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퍼즐은 ‘2.6 숭고’이다. 이는 나 개인이 여러 미학의 개념들 중 ‘숭고’라는 개념 자체에 큰 매력을 느끼는 사람인 동시에, 책에 제시된 수많은 퍼즐 사례들 중 가장 완결성 있게 대답해낼 수 있는 퍼즐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 퍼즐 사례는 영국의 비평가이자 극작가 존 데니스가 알프스 몽스니 고개를 지날 때의 경험을 소개하며,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쾌를 주는 게 가능한지, 그렇다면 이 경험은 미적 경험인지, 예술 영역에서도 이러한 경험이 가능한지 묻고 있다.
3장 ‘의미와 해석’에서는 ‘3.32 햄릿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질 수 있는가?’가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내가 실제로 미술비평론 수업에서 제기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적용한다. 내가 품었던 의문은, 우리가 허구적 인물의 행동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을 이용하는 게 정말 가능하고 또 정당한지였다. 이 퍼즐 사례가 묻고 있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의 이해가 <햄릿>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를 높이는지, 아니면 저자의 원래 의도를 제대로 감상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는지에 관해 묻는다.
4장에서는 본문에 제시된 ‘포셔를 연기하기’ 퍼즐 사례가 가장 흥미로웠다. 이는 내가 아마추어 뮤지컬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 퍼즐 사례는 셰익스피어 극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배우를 발탁해야 할지, 아니면 밋밋하지만 원작을 충실히 살린 배우를 발탁해야 할지에 관한 딜레마를 담고 있는 퍼즐 사례다. 극본은 한정된 것만을 말해주며, 빈 부분을 채우는 건 배우의 몫이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의도된 빈 부분이고, 어디까지가 채워야 할 빈 부분인가? 더불어, 단순히 극의 빈 부분을 채우는 것을 넘어, 새롭게 재해석하면 안 되는 것인가?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배우는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지시에 따르는 실행가에 불과한가? 이는 실제로 내가 미학을 공부하는 동시에 무대에 서며 던져왔던 질문이다. 이 퍼즐 사례는 특히 본문에 제시되어, 이후 배틴이 제시하는 이론들에 의해 설명된다. 원작에의 충실성은 대본이나 악보에 담긴 특정한 지시사항들에 대한 충실성이라고 간주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창작자의 의도에 대한 충실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은 이 퍼즐 사례에 대한 유의미한 가이드라인으로 보였다.
5장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퍼즐 사례 역시 본문에 제시되어 있다. 바로 ‘록 음악의 가사들’이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선정하고 제시한 퍼즐 사례 중 가장 우리의 삶과 맞닿아있는 퍼즐 사례일 것이다. 이 퍼즐 사례는 노골적이고 저속하고 폭력적인 가사를 지닌 록 음악들에 가해지는 비판에 대해, 사회의 도덕을 지키는 건 예술가의 임무가 아니며, 예술가들에게 뭘 해라 하지 말아라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지 않느냐는 대답이 합당할 수 있는지 물음을 제기하는 퍼즐 사례다. 이 퍼즐 사례가 흥미로웠던 것 역시도 내가 실생활에서 이에 관해 고찰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때 검정치마라는 락 밴드의 노래에 관해 리뷰를 쓸 일이 있었는데, 그 이전에 발매된 검정치마의 앨범 <Thirsty>가 성매매와 여성착취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거한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가사에 그런 내용이 들어갔다고 해서 검정치마라는 가수를 이른바 ‘여혐’ 가수로 취급하는 게 맞는가? 만약 그렇다면, 예술적 논의에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화자와 창작자는 구분해야 맞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무시해도 되는가? 실생활에서 스스로 던져야 했던 질문을 미학 이론에 비추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만족스러운 퍼즐 사례였다.
마지막 6장은, 아무래도 중점적으로 다뤄진 <기울어진 호> 퍼즐 사례가 그 자체로 흥미로웠지만, 이를 제외하면 ‘6.15 핑크와 블루’가 가장 흥미로웠다. 왜냐면 이 퍼즐 사례가 현대 예술에 관한 통념적 편견을 대변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퍼즐 사례는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는 교수가 장난으로 좌우 반반씩 각각 핑크와 블루를 칠한 그림을 ‘두 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구성’이란 제목으로 출품해 평단의 찬사를 받았을 때, 이 호평은 실수인 것인지, 그림의 정체를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평단이 호평했을지, 제목이 달라지거나 무제였다면 어땠을지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실제 많은 대중이 현대 예술을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고 칭하며 제기하는 비판과 마찬가지이다. 그냥 무의미해 보이는 어떤 사물에 이름만 붙이면, 또는 정말 못 그린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기만 하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인가? 그 판단의 기준은 어떻게 되는가?
이렇듯 다양한 퍼즐 사례들을 만날 수 있는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이 퍼즐 사례들이 <예술이 궁금하다> 속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책의 1장을 읽어가면서는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 글의 1장에서 언급했듯 묻고 답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우리에게 일종의 구원을 주는 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1장을 마치면서는 조금의 실망감을 안게 되었다. 이는 제시된 퍼즐 사례들에 관한 답이나 힌트가 제시되지 않았을 뿐더러, 배틴이 본문에서 설명한 이론들만으로는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운 퍼즐 사례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소개한 ‘1.20 미적 등가물’ 퍼즐 사례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퍼즐 사례는 필경 1장에 소개된 예술 작품의 존재론에 비추어 해결하도록 의도되어 배치된 퍼즐 사례일 것이다. 배틴은 예술 작품의 존재론에 관해, 유물론자들과 관념론자로 크게 나누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유물론자는 예술작품을 무언가 물질적인 것, 가령 예술가가 어떤 마음을 가질 때 그의 뇌의 상태라든지, 캔버스 위에 있는 물감덩이 등으로 보며, 관념론자들은 예술가와 감상자가 일정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생각이나 감정의 어떤 패턴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 제시된 퍼즐 사례를 풀기는 어렵다. 물론 부분적인 답변은 가능하다. 예술가의 뇌의 상태를 예술작품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물질부분으로 상정하는 유물론자들은 서로 다른 예술가의 작품은 결코 등가물이 될 수 없다고 볼 테고, 캔버스 위에 있는 물감덩이를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자들 역시 그림과 소네트, 음악이 서로 등가물일 수는 없을 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관념론자의 입장에서, 또는 이들이 등가물이라는 입장에서 답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관념론에 대한 설명의 불충분함에서 기인한다. 관념론자들이 말하듯 예술이 ‘예술가와 감상자가 일정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생각이나 감정의 어떤 패턴‘이라면, 그 방식은 무엇이며 그 패턴은 무엇인가? 또 우리가 칸딘스키의 미술적 목표를 알고 있을 때, 소네트와 음악과 그림이 세계 너머에 있는 본질을 포착함으로써 등가물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때 어떤 관념론을 채택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록 음악의 가사들’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 퍼즐 사례 뒤에 따라붙는 배틴의 설명 덕에, 이 퍼즐 사례가 미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 사이의 긴장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배틴은 이 설명의 끝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이런 논쟁들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적 가치들과 윤리적 가치들 간의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설명에 좌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설명 역시도 쉽게 동의에 이를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p. 274)
이 문제가 미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의 대립으로 환원될 수 있다면, 그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답을 내려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이 퍼즐 사례에 대해, “아, 그건 미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의 대립이고, 둘 중 어떤 것을 우위에 놓아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문제야.”라고 한다면, 이는 답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설명이 될 뿐이다.
물론 비교적 직관적으로 바로 뒤에 소개되는 이론들을 통해 답을 제시할 수 있는 퍼즐 사례들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장의 마지막에 제시되는 대다수의 퍼즐 사례가 책의 내용만으로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나는, 여러 퍼즐 사례들을 제시하나 이에 관한 적절한 힌트나 가능한 답안을 제시하지 않는 이 책의 구조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이 책의 공과 과를 살펴보며 기존의 예술 교육이 이론을 먼저 제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역설적인 질문을 갖게 되었다. 배틴도 인정하듯, 하나의 퍼즐 사례는 여러 가지 측면이 결합되어 풀리게 된다. 어떤 학문의 중심적 주제들은 그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답이 제시되지 않은 퍼즐 사례들은 독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이 퍼즐 사례들을 온전히 풀어내는 데에는 이 책의 주제 전반을 가로지르는 통합적 지식과, 적은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는 짧은 이론들보다 깊은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틴은 독자들이 그렇게 읽고, 그렇게 공부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각 퍼즐 사례에 이 책의 어떤 장을 참고하면 좋을지, 또는 어떤 내용을 상기하면 좋을지 적어두는 최소한의 지침이라도 있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입장이다.
만약 내가 가정한 대로 미학이 ‘묻고 답하기’와 필연적으로 결부된 학문이라면, 이 학문에 관한 성공적 지도를 위해서는 물음뿐만 아니라 답에도 초점이 충분히 맞춰져야 할 것이다. 물론 배틴의 문제의식 자체가 지금까지의 미학 교육이 답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강화하는 데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있었다는 것이니, 이는 그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견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답 중심의 이론 교육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를 지지하면서도, 던져진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이론들을 통해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으며, 무엇이 더 우세한 견해인지, 그런 결론에 대해 더 생각해볼 지점은 무엇인지 제시해달라고 하는 것은 충분히 양립 가능한, 더 나아가 발전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쉬운 지점들에도, 재미있는 퍼즐 사례들을 통해서 미학 이론들을 고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이 책은 미학 입문자, 특히 스스로 묻고 답하는 그 방법 자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줄만한 좋은 책이다. 미학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질수록 내가 앞서 제시한 독파의 난점이 해소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묻고 답하기를 끊임없이 이어나가야 하는 미학도들에게 그 길을 함께 걸어가 줄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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