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필경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을 뿐, 누구도 또 무엇도 근본적으로는 우리를 해할 수 없다.

<명상록>
Photo credit: Damien Paeng

<인간관계론>에 이어 숱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숱한 추천을 동력으로 삼아 읽은 책. 가급적 주석이 풍부한 원전 번역본을 읽고자 하는데, 마침 김재홍이 헬라스어 원전을 완역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와 해당 역본으로 읽었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은 <명상록>의 원제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이라는 제목에 드러나 있듯, 이 책은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기 자신에게 해주는 말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줄곧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뇐다: 이 세상은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신은 선하기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은 일이다. 따라서 온갖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도 가장 좋다. 우리에 내재하는 내면의 수호신(daimon, δαίμων)이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한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잘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필경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을 뿐, 누구도 또 무엇도 근본적으로는 우리를 해할 수 없다. 한편 우리가 점유하는 이 시공간은 우주의 그것에 비하면 티끌이기에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모두 의미 없다. 우리는 모두 죽고 잊힐 것이며, 설령 우리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 해도 그 역시 죽고 잊힐 것이다.

장기적 사고, 여유, 자신감, 큰 그릇, '점이 아니라 선'을 보는 마음. 그 경지에 있는 것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세속의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마음' 아닐까. 저자의 호연지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위의 내용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저자의 고뇌가 느껴졌다. 저자 또한 이 마음을 가지고 싶은 사람, 바꿔 말하면 아직 가지지는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는 화두가 담긴다. 최근의 나는 더 초연한 사람이 되는 법,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품는 법에 대해 고민했고, <구원>, <점이 아니라 선>, <인간관계론> 등에 그런 고찰을 담았다. 저자는 무려 12장 488절짜리 글에 '초탈한 사람이 되자'라는 내용 하나만을 담았다. 얼마나 이를 원했기에 그리도 계속해서 적었을까.

이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마음과 생각이 피어오르는 것은 통제할 수 없다. 어떤 내면화된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 믿음이 항상 마음과 생각에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어떤 마음을 가지자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가르치고 암시하는 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한편, '신의 존재'는 저자의 모든 믿음이 기반을 두는 일종의 공리(axiom)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저자가 삶에 대해 가지는 그 총체적인 관점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인세에 개입하는 선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내내 이 관점의 건전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의 깊이를 배우고 싶은 동시에 그래 봤자 그릇되고 허황된 생각 위에 비스듬히 얹힌 성숙함이 아닌가 고심했다.

그러다 문득, 핵심은 신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건 어떤 신념으로부터 자신의 행동 양식을 도출할지, 또는 반대로 자신이 가지고 싶은 삶의 태도를 위해 어떤 공리를 채택할지이다. 신이 존재하는지, 이 세계는 결정되어 있는지 등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결국, <명상록>을 제대로 읽는다는 건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어떤 공리가 내 머릿속에 박혀 있으며 어떤 당위가 나의 감정을 촉발하는가. 나의 우주는 어떤 원리하에 작동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그 공리, 당위, 원리를 고려했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무엇을 일러야 하는가.


이 책의 강렬한 서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직장을 퇴사할 때 John이 내게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나보다 뛰어난 면모가 아무리 적어도 하나는 있을 테니, 그것을 배우라고. 그렇게 모두를 마이크로 멘토(micro mentor)로 삼으라고. <명상록>의 1장에는 바로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두 달간 꽤 많은 사람과 능동적으로 대화했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고마운 마음에 이름도 함께 밝히고 싶지만, 무엇을 얻거나 배웠는지만 정리해 보고자 한다.

  • 어떤 것이 좋으냐 좋지 않으냐를 판단하기에 앞서 그 상위의 문제를, 곧 그것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
  • 소유가 얼마나 무상한지, 또 소유의 기회비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과 그 방법
  • 감정의 발생 시점에 그것을 글로 적음으로써 잊거나 유예할 수 있다는 사실
  • 오랜만에 만난 이를 환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
  •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말과 행동의 투
  • 주변 사람을 애정하는 시선
  • 상대방에 대한 관심에 진정성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
  • 구원이 꼭 자생적이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것 - 여전히 자생적이어야 한다고 믿지만 -
  •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
  •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은 경험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는 기제
  • 경청의 즐거움
  • 으스대지 않으면서도 여유로운 태도

마지막으로 내가 자기 자신에게 이르고 싶은 말을 적어본다.

8월은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지근거리에 가기조차 어려워 밤잠을 설치며 보낸 한 달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중 어느 바람은 실현됐고, 어느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실현된 것 중에 후회하는 것도, 실현되지 않은 것 중에 일절 아쉽지 않은 것도 있다. 맞이하는 모든 것들은 지나가며 그에 상응하는 것들이 또 새로 온다. 과거에 그랬듯 이번에도 그럴 것이며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수많은 가능 세계 중 오직 단 하나로서 그 모든 기회와 선택과 타의가 결합한 결과물이다. 해답은 지금 이 세계를 사랑하는 것에 있지, 후회하거나 조바심내는 데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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