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신이 죽고 찾아온 과학의 세계에서, 진정 진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은 대관절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
SF 소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기에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SF 소설로서 독창적인지 알지 못한다. 이 부분은 평단의 평을 믿는 수밖에 없을 테고, 오히려 그 장르에 무지한 자로서 보다 개인적인 평가를 남기려 한다.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고등학생 때 알게 되었다. 입시를 목전에 둔 고등학생이 과학 분야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으레 읽고는 했던 책을 통해서 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개념은 충격적이었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은 오직 질서에서 무질서로만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시간의 흐름은 종말을 향한 달리기였고, 이를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작품집과 동명의 제목을 가진 <숨>은 바로 이 지점을 천착한다. 공기의 총량은 정해져있는 상황, 곧 종말은 정해져있는 상황을 살아가는 한 과학자의 묵상록. 내가 중고로 산 이 책에는,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나는 다시 살게 될 것이다. 당신을 통해서."라는 문장에 유일하게 전 소유자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는 테드 창이 인류에 남기는 말이자, 인류가 먼 훗날의 누군가에게 남기는 말이자, 전 소유자가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또 우연찮게 나에게 남기는 말일 것이다.
남다른 충격을 선사했던 작품은 <거대한 침묵>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 10분이면 읽을 수 있는 아주 짧은 단편작이니, 직접 느껴보시길 권한다.
다른 한편으로, 테드 창의 필력에 주목할 필요도 있겠다. <숨>을 읽으면서 이 소설은 엔트로피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을 즉각 느낄 수 있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을 읽으면서는 자유의지에 관한 것임을, <옴팔로스>를 읽으면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사전 지식이 풍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지만, 그렇기에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게 아님을 안다.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주제와 문제의식을 알 수 있게끔 풀어나가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테드 창이 갖고 있는 독보적인 필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집 자체가 구성된 방식도 만족스럽다. 첫 번째로 실린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작가의 상상력과 비범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앞으로 제시될 작품들에 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나는 중고서점에서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을 몇 페이지 읽다가, 충동적으로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제각기 길이가 다른 작품을 적절히 배치해 호흡을 조절해 주는 것 역시도 훌륭했다.
책의 뒤표지에는, '독보적 상상력과 예언적 통찰로 무장한 소설가가 던지는 질문. "그리하여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소개문이 대문짝만 하게 적혀있다. 솔직히 조금 호들갑 같기는 하지만, 쉬이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언어란 무엇인가, 기록이란 무엇인가, 가능 세계란 무엇인가, 우연과 필연이란 무엇인가.... 근래 읽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도 형이상학적이었다.
진보란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일 뿐이라면 진보란 없다. 그저 상태의 변화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기술의 진보는 분명 있다. 최소한, 있다는 직관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상의 진보로 이어지는가? 핵에 관한 기술적 진보는 핵무기 시대를 열었다. 약 제조 기술의 진보는 마약 천국을 만들었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신이 죽고 찾아온 과학의 세계에서, 진정 진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은 대관절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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