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위기>와 <에로스의 종말>

에로스의 본질은 "부정성", 곧 "할 수 있을 수 없음"이다.

<서사의 위기>와 <에로스의 종말>
Photo credit: Damien Paeng

메신저백에 넣어 다닐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서사의 위기>를 구매했다. 사실 속지를 조금 보는데 너무 난해하게 적혀 있어서 사지 말까 고민했는데, 앞에서부터 읽으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내용이다.

저자가 하는 말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서사라는 것은 본디 숨김과 결여가 있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모든 순간을 정보화함으로써 서사가 부재하게끔 만들었다. 그에 따라 탈신비화된 세계는 벌거벗은 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그렇기에 숨김을 그 본질로 가지는 이야기는 이제 이 세계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정보 쪼가리들의 집합을 서사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모든 걸 다 드러내며 연속적으로 그저 나열된 정보는 이야기일 수 없다. 이야기는 그것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치유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이야기는 SNS의 "Story(이야기)"에 밀려 자기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렇게 이 세계는 점점 허무에 가까워진다.

벤야민 해설서 또는 주석서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는 했지만, 서사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인생이 이야기 만들기라면 현대인은 어떤 인생을 영위하고 있는가, 묻게끔 만드는 책.


한편 <에로스의 종말>은 8년 뒤 나온 <서사의 위기>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