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일지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 미래에 가닿는 건 순전히 본인의 노력이니까. 미래를 더 낫게 만들 수는 없어도, 그 미래를 보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

우선 한국에서는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원제는 <Arrival>임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겠다. '접촉'과 '도착'은 뉘앙스적으로 너무 다를뿐더러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여전히 다르게 느껴지는데, 왜 굳이 이렇게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테드 창의 원작 <네 인생의 이야기>을 먼저 읽고 이 영화를 감상했다는 점 역시 짚고 싶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 어떻게 시각화되었을까 궁금한 부분들이 몇 있었다. 첫 번째는 헵타포드, 두 번째는 헵타포드 B. 그리고 이 둘의 시각화 모두 훌륭했다. 역시 드니 빌뇌브. 그리고 그답게 음향 역시도 훌륭했다. 헵타포드의 말소리나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의 그 광활한 배경음.
하지만 페르마의 원리가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원작에서 이 원리는 헵타포드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헵타포드 B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원리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빛은 최단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택한다. 하지만 경로라는 건 그 끝을 알아야 설정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끝을 모르는 채 투사된 빛은 어떻게 최단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택하는가. 하지만 영화 내에서는 이에 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
영화의 주제 의식에 관해서만 깊게 얘기하는 걸 지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른 글에서 밝혔듯,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이야기와 주제 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 곧 이야기와 주제 바깥의 부분에도 주목했을 때 탁월한 감상평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주제 의식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겠다.
영화의 말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있는 것은 있는 것. 동시에, 우리 세상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보면, 우리의 모든 시공간 단면들은 이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치 흔들 다리를 걸어가듯 정해진 길을 위태하게 걸어갈 뿐이다. 이제 그 걸음걸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는 우리가 그 결말을 아는 영화를 보는 것과도 같다. 내가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이미 읽었음에도 이 영화를 본 것처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기에. 그 품이 따뜻할 거라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를 안는 것은 다르기에. 딸이 어떻게 생긴지 아는 것과, 그 딸을 직접 내 눈에 담는 것은 다르기에.
영화는 의도적인 신의 배열을 통해 이러한 주제 의식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마치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딸의 이야기와 루이스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교차되며 제시되듯,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문자 언어에 익숙해질 때마다 미래의 모습들이 인서트 된다. 한나가 병에 걸려 죽는 장면은 꽤 일찍, 영화의 중반부에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여기서 이 영화의 이야기는 이미 다 전달된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에 익숙해지며 미래를 알게 되고, 그럼에도 낳게 되는 그 딸 한나는 병에 걸려 죽는다는 그 이야기.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영화를 본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니까. 그것을 아는 것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르기에.
여담으로, 많은 철학적 논의들이 생각났다.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시간에 관한 3차원 이론과 4차원 이론. 시간에 관한 3차원 이론은 3차원 공간이 존재하는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시간 축은 없다는 주장. 반대로 4차원 이론은 공간의 각 축이 존재하는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시간 축이 존재한다는 주장. 다른 하나는 콰인의 번역 불확정성 논제. 언어에 관한 행동주의적 입장을 채택, 언어 A와 B 사이의 번역 편람 중 올바른 번역 편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일지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 미래에 가닿는 건 순전히 본인의 노력이니까. 미래를 더 낫게 만들 수는 없어도, 그 미래를 보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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