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칸트인가>
칸트의 3대 비판서는 이렇게 마음을 해부하여 이론적 지식, 실천적 행위, 예술적 창조가 어떻게 서로 다른 조건에 근거하며, 그 보편성에 있어 어떻게 서로 다른 타당성 범위를 거느리는지 보여주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왜 칸트인가>는 이를 훌륭하게 요약하고 해설한다. 꼭 읽어봐야 할 책.
올해 읽은 책 3선에 꼽힐 것 같은 책이다. 칸트 철학 그 자체도 당연 인상적이었지만, 어렵기 그지없는 그 철학을 적당한 밀도의 전문성과 대중성으로 풀어낸 저자의 노력과 능력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을 통해 진, 선, 미, 달리 말해 인식의 능력, 욕망의 능력, 감정의 능력에 관한 문제를 탐구한다. 이는 각각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 문제들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문제들을 해명해 나가는 과정에서 칸트는 기존의 질서, 곧 각 영역에서 무엇이 중심에 위치하고 주변에 있었는지를 전복한다. 진의 영역에서는 대상이 아니라 인식 주체를 중심에 둔다. 선의 영역에서는 좋음이 아니라 법칙을 중심에 둔다. 미의 영역에서는 개념(보편)이 아니라 사실(특수)을 중심에 둔다. 마지막으로 원인과 관계를 전복하며 기계론적 자연관에 유기체적 자연관을 마주 세운다. 이것이 칸트가 일궈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긴밀히 맞닿아 있다. 내용 하나하나보다도 이러한 탐구 방식이 더 큰 놀라움을 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정합적이고 연속적인지, 괜히 서양철학이 칸트로 들어와서 칸트에서 나간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 주체의 마음, 그 작동 원리를 탐구한다. 이때 비판이란 분석하고 정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제목의 뜻은 곧 '순수이성의 영역을 구획하는 것'이다. 이 의미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칸트가 이 책에서 진행한 연구를 쭉 따라가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