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로운 날씨, 새로운 언어, 새로운 사람들 사이로 던져 넣어야만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여행가
Photo credit: Damien Paeng

매일 글을 쓴다고 작가가 아니고, 작가라고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어떤 직업을 가진다는 것과, 그 직업과 가장 연관된 활동을 매일, 또는 자주 한다는 것은 종종 은근히 이격되어 있다. 그렇기에 여행을 매일 한다고 여행가가 아니며, 여행가라고 늘 여행을 다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행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정의되는 걸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어디를 어떻게 갔다 왔을 때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여행을 마친 뒤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던 그때. 그새 계절이 바뀌어있었고, 정문 앞 공사가 시작됐었고, 햇빛의 산란이 조금 달라져있었다. 수없이 지나쳐왔던 그 길이 왠지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 길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진 것.

돌이켜 보면 그때 비로소 여행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여행이 나로 하여금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게 된 바로 그때.

그렇기에 나는, 여행가라는 직업을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심지어는 날마다 숨을 쉬는 방구석에서도 해낼 수 있는 바로 그것으로. 그렇다고 이러한 정의 방식이 방구석 외톨이마저 '여행가'라고 불릴 수 있는 아이러니를 마냥 열어놓기만 하는 건 아니다. 인간의 마음과 감각은 너무나도 쉽게 익숙해진다. 일상에 녹아든 것들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건 아주 영특한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로운 날씨, 새로운 언어, 새로운 사람들 사이로 던져 넣어야만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방구석 외톨이가 여행가가 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은 "여행가로 살고 싶다"라는 단순한 소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행가'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이렇게 시작된 생각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여행가에게 기록은 자신이 여행가임을 증명하는 수단이리라.』 자신의 시선이 발견한 무언가 - 그것이 꼭 대륙, 유적, 물질 등이 아니더라도 - 를 통해서만 그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다시 맨 처음의 바로 그 소망으로 나를 또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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