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영화들

내가 뽑은 2021년의 영화는 <듄>이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 끝나고 "재밌다, 미쳤다"를 되뇌었다.

2021년의 영화들
<듄> 中

지난 1년간 약 스무 편의 영화를 봤다. 여기엔 다시 본 영화들, 가령 <싱 스트리트>나 <어바웃 타임> 등은 포함이 안 되어 있으니, 그거까지 합치면 꼬박 이틀 정도를 영화 보면서 보냈다고 볼 수 있겠다. 어쨌든, 내 마음대로 2021년의 영화를 뽑아보고자 한다.


영화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이루어낼 수 있는 성취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연극도, 뮤지컬도, 드라마도 아닌 '영화'가 무엇을 성취해 낼 수 있으며, 또 성취해 내야 하는가?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나는 영화가 어떤 '소재와 주제, 그리고 서사'를 다루는지, 그리고 이를 얼마나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와 '이에 조화되는 음악' 속에 녹여내는지, 마지막으로 그들이 담긴 씬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본다. 위의 요소들이야말로 여러 장의 사진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그 위에 사운드를 덮어 하나의 완결된 영상물을 만들어내는 영화라는 장르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뽑은 2021년의 영화는 <듄>이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 끝나고 "재밌다, 미쳤다"를 되뇌었다. 원작을 안 읽어봐서 스토리가 얼마나 압축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대한 스토리를 두 시간 반이라는 짧다면 짧은 러닝타임 안에 효과적으로 풀어냈다고 느꼈다.

유달리 좋았던 점을 몇 가지 뽑을 수 있겠는데, 첫 번째로는 사운드 연출이다. 영화의 전반에 깔리는, 마치 모래 벌레를 부르는 소리인 듯싶은 베이스 드럼 소리부터 각각의 씬에 깔리는 배경음악까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사운드 연출이 굉장히 훌륭했다. 사운드 연출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목소리' 능력 사용 씬은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강력하고 웅장한 능력을 의심의 여지 없게 설명해낸다.

소위 미장센이라 부르는, 이미지의 아름다움 역시도 탁월했다. 특히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에 때때로 붉은 색감이 돌면서 빚어진 이미지는 경탄스러웠다. 이외에도 아라키스에서의 대규모 전투씬이나 황제의 사자가 폴 가문의 항성에 도착하는 장면 등 광각으로 펼쳐진 장엄한 장면 하나하나에 말 그대로 압도되었다. 영화가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그 끝에 이르렀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서사 또한 좋았다. 찾아보니 이야기가 너무 느슨하다는 비판이 있는 것 같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예고편 격의 작품이다 보니 더 그런 비판에 시달릴 법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세계관이 펼쳐져 있고 그 속에 자리 잡은 비유들 - 가령 중동 지정학이라든지 메시아 서사라든지 - 또한 매력적인, 충분히 훌륭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듄>을 포함해 Best 3를 뽑아보고 싶었으나, 하기할 7개 영화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 너무 힘들고, 평론가도 아닌 내가 굳이 그 작업을 해야 하나 싶어서 그냥 나열하고 짧게 평을 남기는 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래의 순서는 순위가 아니다.

​1. <프렌치 디스패치> - 강박적으로 구성된 이미지와 이야기가 맛보게 해주는 '영화'라는 장르의 묘미.

2. <소울> -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픽사의 능력. 행복은 우리 곁에 있다.

3.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 히어로 영화가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감격. 넓어진 외연에 비해 부족한 깊이는 흠.

4.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 창작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이보다 더 훌륭한 창작이 어디에 있을까?

5.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 다양한 마법과 소품으로 꽉 채워진 이야기와 장면들. 쓰러진 영혼을 구원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어야만 한)다.

6.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 돈은 광기다. 물론, 가진 자에게만 광기가 깃드는 건 아니다.

7. <본 아이덴티티> - 21세기 첩보 액션의 원류. 망각에 의해 다시 생긴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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