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 스프링캠프 최홍규 파트너 인터뷰
이제는 한국 바깥을 바라봐야 하는, 또 바깥에서 기회가 열리고 있는 형국이다. 변곡점의 시기다.
<싱가포르 견문록>에서 밝혔듯, 다가올 5년 정도가 외국 진출의 적기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스프링캠프의 파트너로서 지난 6월 팔로알토에 오피스를 직접 열고 11월부터는 아예 미국에서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 창업가들을 돕고 있는 스프링캠프의 최홍규 파트너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스타트업, VC, 미국 등에 대해 함께 나눈 얘기를 정리해 보았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스프링캠프에서 VC로 일하고 있는 최홍규다. 4년 가까이 일했고, 주로 시드(Seed) 단계에 있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해 왔다. 투자한 회사는 23개 정도 된다. 그전에는 약 2년 동안 직접 창업을 했었고, 그때 스프링캠프에게 시드 투자를 받았던 것을 연으로 스프링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 스프링캠프에 대해서도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스프링캠프는 9년 차 국내 벤처 캐피탈이다. 시드 단계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으며, 지금까지 약 240개의 회사에 투자했다. 초기 팀에 투자한다는 특성상 투자 분야를 가리지는 않고 있다. 독자들이 아실 만한 피투자사로는 오늘의집, 수아랩, 비프로, 에어스메디컬, 플렉스 등이 있다.
최근의 변화를 짚고 싶다. 스프링캠프는 원래 스노우(네이버의 자회사)의 100% 자회사, 다시 말해 국내 대기업 계열의 벤처 캐피탈이었다. 아무래도 그에 따른 한계가 있었다. 일례로 글로벌 단위의 투자, 또는 일반적으로 벤처 캐피탈이 잘 투자하지 않는 영역에 대한 투자가 어려웠다.
스프링캠프의 비전은 인재들을 찾고 그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에 구성원 모두가 현재 상황,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더 잘 실현하기 위해, 스프링이라는 회사를 함께 설립하고 스프링캠프의 최대 주주로 자리했다. 이번 변화를 계기로 우리의 비전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VC라는 직업 특성상, 투자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고는 하는 것 같다. 조금 비틀어서, 4년 동안 VC로 일하며 자신에 대해 발견한 점을 들어보고 싶다.
내가 무엇에 의미를 느끼는 사람인지 알게 된 것 같다.
VC가 되기 전, 곧 창업가였을 때 했던 일들과 지금 하는 일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스프링캠프가 다른 벤처 캐피탈들과 결이 조금 다르기 때문도 있겠지만, 어쨌든 창업할 때 했던 생각과 투자할 때 하는 생각이 결국 비슷한 것 같다.
취미 교육 시장에서 창업했었다. 클래스101, 탈잉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을 벌 수 있게 할까' 고민하며 문제를 풀어나갔었다. 직장을 다니고는 있지만 사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게 있고, 종국에는 그걸 통해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스프링캠프에서 VC로서 하는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상이 직장인에서 창업가로 달라졌을 뿐. 꿈, 하고 싶은 것, 바꿔 나가고 싶은 방향 등을 보는 게 재밌고,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다.
결국, 나는 사람들이 꿈을 이루는 걸 돕는 것에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고, 지금은 그걸 투자로 풀고 있다는 게 나에 대한 발견이다. 다만 그게 꼭 투자라는 방법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맨 처음에는 그게 창업이었던 거고, 지금은 투자인 거고. 미국에서는 또 달라지지 않을까.
- 남들을 돕는다는 것에는 타인에 대한 믿음이 필수불가결한 것 같다. 더 나아가 VC라는 직업 자체가 '믿는' 직업 아닌가 생각도 든다. 사람, 회사, 특정 분야나 거시적 경제 상황 등에 대한 믿음까지. 최홍규 파트너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투자 관점에서, 사람을 믿고 투자한다. 근데 '딱 보면 알아' 이런 느낌은 아니다. 깊은 대화를 하려 노력한다.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려왔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왜 내렸고 그 선택이 자신을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하며 알아간다. 풀고자 하는 문제와 그 문제가 속한 산업에 대해 이야기도 하지만, 그게 주가 되지는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특정한 산업과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머릿속에 그려보기는 하지만, 어떤 분야가 잘 될 것 같다고 점을 찍지는 않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더 주목하는 분야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어디에 주목하는가, 어디에 인재가 몰리는가 보는 것에 가깝지, 분야 자체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느낌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스프링캠프의 미국 진출을 설명할 수도 있다. 인재들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왜 지금 미국에 나가 창업하려고 할까? 고민을 거듭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 남은 먹을거리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한국에서 네이버, 카카오, 토스, 배달의민족 등을 이기긴 어렵다.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면 언더독의 반란이 가능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지만, 블록체인이나 AI조차도 그런 흐름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몰로코, 센드버드, 눔 등 좋은 선례가 생겼다.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도 올라가고 있다. K-컬쳐가 일종의 인프라가 되어주고 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았을 때는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한국 바깥을 바라봐야 하는, 또 바깥에서 기회가 열리고 있는 형국이다. 변곡점의 시기다.
한편 그게 '미국'인 이유는 자명하다. 몇 해 전까지는 미국과 중국을 G2로 묶어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미국 자체가 곧 글로벌이고 일종의 왕중왕전인 것 같다. AI가 발전함에 따라서 그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 '믿음'에서 '미국 진출'까지 왔다. 미국에 나갔을 때, 한국인이 미국에서 잘할 수 있는 이유를 포착한 바가 있는가?
한식당이 아니라도 한국 노래가 나온다. 우버를 타도 한국 노래가 나온다. 쇼핑몰 매장 진열대에 보면 불닭볶음면이 '베스트 셀링' 딱지를 달고 있다.
'한국인의 손이 더 야무지다' 같은 얘기가 아니다. 뷰티, 푸드, 패션 등의 분야에서, 한국인이고 한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비교 우위가 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 한국 창업가들이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는 흐름이 있다는 것은 잘 알겠다. 그렇다면 비교 열위 요소로는 뭐가 있는가?
K-컬쳐를 활용하는 것처럼 한국인들'만' 할 수 있는 건 있을지언정, '한국인이라서' 못하는 건 없다. 영어든 뭐든.
다만 한국인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한 가지 지점이 있다. 바로 지지 기반이 없고, 따라서 시드 투자를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면 미국인, 한국인, 중국인, 이스라엘인, 인도인 상관 없이 잘하는 사람, 잘하는 팀이 투자받는다. 하지만 시드 단계에서는 볼 수 있는 게 많이 없고, 그래서 믿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뒷배가 필요하다. 중국인에게는 중국계 펀드가, 이스라엘인에게는 이스라엘계 펀드가, 인도인에게는 인도계 펀드가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그런 지지 기반이 잘 없는 게 현실이다.
민족 특성에 따른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앞의 대답에서 말했듯, 이제서야 한국 창업가들의 미국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거라고 해석하는 편이 합당하다. 이제 흐름이 생기고 있으니 점점 나아질 것이다. 스프링캠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자 한다.
코슬라 벤처스라는 인도계 벤처 캐피탈이 있다. 처음에는 인도인들에게 주로 투자를 했고, 그렇게 투자받은 인도계 스타트업들이 커지면서 코슬라 벤처스 역시 글로벌 벤처 캐피탈이 되었다고 한다. 스프링캠프도 그런 길을 밟고 싶다.
- 거시적인 어려움 말고도, 미국을 진출하려는 창업가들이 가지게 되는 막막함도 있을 것 같다. 이번 미국 오피스 셋업을 ‘마치 스타트업처럼’ 직접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점이 생각보다 어려웠고 어떤 점이 생각보다 쉬웠는가?
치안, 외로움 등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크진 않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비자다. 왜 미국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직원들은 왜 따라와야 하는지 등을 소명하는 게 어렵고 또 오래 걸린다. 비자에만 집중해도 족히 몇 달은 걸릴 텐데, 일하면서 준비해야 하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
이외에, 미국에서 어떻게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스프링캠프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으니 이를 참고해 준비해 보시면 될 것 같다.
- 지금까지 미국에서의 창업에 대해 다뤘다면, 간단하게 ‘한국 창업자의 미국 창업 또는 글로벌 창업의 증가’ 관점에서 한국 벤처 캐피탈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도 다뤄보고 싶다. 한국 벤처 캐피탈들도 결국엔 미국으로 향하게 될까?
그럴 거로 생각한다. 근데 아주 오래 걸리지 않을까.
미국에서 인프라를 만들고 투자를 잘하는 건 한국에서 그렇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 아닌가. 스프링캠프가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인프라를 만드는 데에 7~8년이 걸렸다. 심지어 최인규 대표가 미국으로 함께 넘어왔지만, 미국에서 그 정도를 만들어내기까지는 30~4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평생 풀어야 할 재미있는 문제를 만난 것 같아 기대도 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또 긴 시간을 들여야만 풀리는 문제라는 점이 좋은 것 같다.
- 미국에 진출하는 창업가에게 단 한 가지의 조언을 해야 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사실 스프링캠프도 미국에서 창업하고 있는 하나의 팀에 불과하다. 조언이라기보다는, "쫄지 말고 하자. 한국인들이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스프링캠프도 옆에서 함께 달려나가겠다. 함께 고생하면서 같이 만들어 나가보자.
스프링캠프는 한국 창업가들이 미국에서 꿈을 이루는 걸 돕고 싶다. 그리고 함께 큰 것들을 만들어내고 싶다. 스프링캠프로부터 투자를 받든 아니든, 지금 당장 창업을 하든 아니든 미국에 온다고만 하면 다 도와드릴 생각이다. 큰 시장을 타도하려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편히 연락해 주셨으면 좋겠다.
미국에 사무실을 크게 열었다. 언제든 와서 편하게 일하고 사람들 만나고, 그래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스프링캠프 팔로알토 오피스는 519 Webster St, Palo Alto, CA에 있다.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최홍규 파트너와 스프링캠프, 그리고 많은 창업가들에게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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