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서는 단순하게 일합니다>

단순함은 단순하지 않다.

<애플에서는 단순하게 일합니다>

나는 애플 생태계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개별 포장 기준으로 열네 개 정도의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거의 매일 사용한다. 내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은 애플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위대한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단순하게" 일한다는 게 대관절 무엇인가? 저자의 말을 종합해 봤을 때, 여기에서 단순함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해 출시한다는 공통의 목적 아래에 역할과 지위를 막론하고 거침없이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단순함에는 선결 요건이 있다.

첫째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에 구성원들이 동의해야 한다. 이런 테제를 내세우는 조직은 많지만 15만 명이나 되는 직원이 실제로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조직은 많지 않을 테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목적과 거기서 파생되는 자부심만큼 구성원들을 강하게 응집시키는 건 없으리라.

둘째로 구성원들이 바로 그 목적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저자의 묘사를 따르면 애플의 직원들을 그 목적만을 향해 달려간다. 시도때도없이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다. 자신의 영역이 아니어도 문제가 발견되면 가차 없이 지적한다. 역할, 지위, 인간관계, 개인의 삶 따위를 부차적인 것으로 삼고 오직 거침없이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이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언제든 충원할 수 있어야 한다. 책에도 이런 문화를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나 역시도 이런 문화에서 1년을 채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인재들이 떠나갈 때, 언제든 이재를 수혈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중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기제가 이러한 단순함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단순함은 단순하지 않다.

By Pablo Picasso - https://drawpaintacademy.com/the-bull/, Fair use,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77264911 단순함은 단순하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애플에 취직하면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혔지만, 서평을 적는 지금은 "애플이라는 제국의 해가 지는 날이 올까? 그러기 위해선 어떤 충격이 있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15만 명의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달리 또 있는가? 그런 제품의 철학을 다져놓은 상징적인 인물이 있는 회사는? 그가 내세운 "Simple is the best"라는 철학의 구심력에 굴러떨어지는 인재들과, 압도적이라고 해도 될 만한 시장 선두의 지위, 세계 최고의 인재를 끊임없이 수혈받을 수 있는 환경까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어야 애플이 몰락할까?

수많은 기업이 오래도록 1위의 자리를 지키다 끝내 몰락해왔다. 그건 기업뿐 아니라 로마나 영국 같은 제국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그들과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는 게 앞으로 몇 주간의 즐거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