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인간을 움직이는 건 이성만이 아니다.

설득
Photo credit: Damien Paeng

오랜 시간,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이오, 진리가 나를[너희를] 자유케 하리라(Veritas Me[Vos] Liberabit) 믿어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여전히 나의 금과옥조다. 하지만 모든 가치가 진리와 이성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하물며 사람을 설득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그것이 크게 소용없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칸트의 철학은 크게 진리(眞), 선함(善), 그리고 아름다움(美)이라는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유명한 3비판서가 각각 그것을 탐구하는데, <순수이성비판>은 참된 지식의 조건과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방식을 다루며, <실천이성비판>은 선과 악의 분별, 즉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연구한다. 마지막으로 <판단력비판>은 아름다움, 숭고함 등 심미적 판단의 문제를 다룬다. 이 세 가지 차원은 서로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가치를 판단하고, 또 그에 따라 행동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인간이 참, 진리, 이성 따위의 것들에 기대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성 밖의 것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열등하거나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그저 여러 가지 가치 중 이성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선택한 것뿐이니 말이다.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건 이성만이 아니다. 완전무결한 논리, 상대방의 근본 가설과 공리까지 깨부수는 지성이 상대방을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어떤 도덕적인 동기 부여 또는 아름다운 미소가 상대방을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세계에 드러나 있는 현상이며, 더불어 참이어선 안 되는 명제도 아니다.

이론적 근거는 전혀 없지만, 칸트의 진선미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제시한 설득의 세 가지 요소, 곧 이성(Logos), 화자의 성격(Ethos), 그리고 감성(Pathos)에 비추어 대응시켜보곤 한다. 이는 앞서 이른 귀결을 더욱 강화해 준다. 이성만이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무언가는 아니며, 또 이성만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얼마나 도덕적이며 또 호감을 사는 인물인가, 나의 언행이 상대방의 감정을 얼마나 흔드는가 따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어쩌면 다섯 살 아기도 아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듯한 햇살이지 않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성 중심의 교육과 사고는 이를 쉬이 잊게 만든다. 특히 더욱 높은 이성적 능력을 가지거나 이에 도달할수록. 옳은 것이 선한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라는, 일종의 환원주의 또는 교조주의에 빠지게 된다.

여전히, “참인 말”이 강력하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 글을 쓴 뒤에도 난 설득의 첫 번째 수단으로 이성을 동원할 것이고, 어쩌면 이는 평생을 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되뇌고자 한다. 곧 아름답다고 옳은 게 아님을, 옳다고 선한 게 아님을, 선하다고 아름다운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역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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