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윤희에게>는 결국 상처와 이를 회복하는 시간에 관한 얘기입니다. 아물거나 덧나며 남는 상흔에 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윤희에게>
Photo credit: Damien Paeng

공개를 유예해두었던 추천사.


영화 <윤희에게>는 엄마 ‘윤희'의 첫사랑을 찾아 오타루로 떠난 한 모녀의 여행을 담고 있는 잔잔한 멜로 영화입니다. 오타루의 아름다운 풍경 위에 인물들이 담담하게 포개어져, 겨울의 정취와 사랑의 비애가 묵직하게 전달됩니다.

둘의 여행은 딸 ‘새봄'이 윤희 앞으로 도착한 편지를 몰래 읽어보면서 시작됩니다. 편지의 화자는 가끔 윤희의 꿈을 꾼다고, 그럴 때면 이렇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곤 하노라고 말합니다. 이에 새봄은 모르는 척 윤희에게 오타루로의 여행을 제안합니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오타루에서 윤희는 그녀의 첫사랑 ‘쥰'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가야 했던, 쥰에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던, 그렇게 떠밀리며 살아가야 했던 윤희는 쥰을 보며 마냥 눈물을 흘립니다. 짧은 재회를 뒤로하고 봄의 한국으로 돌아온 윤희는 새로운 삶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쥰에게 답장을 남깁니다. 그 답장을 읽어 내려가는 윤희의 목소리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윤희에게>는 결국 상처와 이를 회복하는 시간에 관한 얘기입니다. 아물거나 덧나며 남는 상흔에 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하며 부끄러움으로 살아왔다는, 그리고 언젠간 용기를 내 새봄에게 쥰의 얘기를 하고 싶다는 윤희의 답장은 그 상처가 얼마나 윤희를 고통스럽게 했는지, 누구도 보상할 수 없는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여전한 상흔이 윤희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보여줍니다.

영화 속 윤희의 상처는 사랑에서 비롯되었지만, 현실 속 우리의 상처는 비단 사랑에서만 비롯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체, 인종, 성별, 신념, 그리고 그보다 더 작고 지엽적인 부분까지, 인간이 정초하고 있는 그 어떤 정체성도 차별과 혐오의 틀이 될 수 있습니다. <윤희에게>는 우리가 언제 어떻게 남길지 모르는 이런 상처들에 관해 숙고할 기회를 주는 작품입니다. 관람과 성찰의 끝에, 우리 모두가 우리 주위의 윤희에게 새봄이 되어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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