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그 어떤 가능했던 세계 중 하필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와 전언.

<라라랜드>
<라라랜드> 中

2017년 2월 26일, <라라랜드>의 첫 신을 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하나의 쇼트로 이어지는, 라라랜드(La La Land), 곧 몽상의 세계로의 초대. 5분 남짓한 시간 만에 이 영화에 매료된 나는 <Another Day of Sun>이 끝났을 때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그 후로 나는 영화관에서만 네 번 더, 그리고 집에서나 모바일 기기로는 열 번이 넘게 이 영화를 감상했다. 감독의 전작인 <위플래쉬>를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 재개봉할 때까지 3년 반을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십수 번, 또는 수십 번을 관람해온 꼬박 6년 반의 세월 동안 이 영화에 관해 제대로 된 감상평을 적지 못했다. 이 컷 다음에 이어지는 컷이 무언지 이미 알고, 대사와 가사를 외워 자막을 끄고 볼 정도로 돌려보았어도, 볼 때마다 황홀함이 덮쳐와 도대체 무엇이 좋았나 도저히 발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비로소 내가 이 영화에서 발견했던 아름다움을 글로 풀어낼 단초를 얻게 되어, 드디어 감상평을 쓰게 되었다.


이 영화는 결국, 도달할 수 있었으나 끝내 그들의 것이 되지 못한 어떤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달려가는 영화다.

영화의 두 주인공인 Seb과 Mia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 낭만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그 목적지는 요원하기만 하다. Seb은 자신의 재즈 클럽을 열고 싶어 하지만 사람들은 재즈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미납된 생활 요금이 있을 정도로 생활고를 겪고 있고, 겨우 구한 레스토랑 피아노 반주자 자리에서는 재즈를 연주했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해고당한다. Mia는 배우가 되고 싶지만, 자신을 알아봐 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오디션에서는 매번 낙방한다. 그러나 그 둘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낭만을 지켜낸다. 각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몽상처럼 보일 그 세계가 의미 있는 건 그들이 함께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지탱하는 서로가 있기에 그 세계는 결코 헛되거나 허무하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오직 누군가의 사랑뿐"("Yes, all we are looking for is love from someone else", <City of Stars> 中)인 이유일 테다.

하지만 이내 그 세계에 현실이 침투하고, 금이 간다. Seb은 보다 안정적인 수입과 생활을 위해 The Messengers라는 재즈 밴드의 일원이 되고, 자신의 꿈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진다. 꿈으로부터 멀어진 자신의 모습 때문에 Mia와 갈등하고, 화보 촬영 탓에 Mia의 일인극을 놓치기까지 한다. 이제 그들 앞에는 현실만이 자리 잡고 있고,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은 더 이상 없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크게 낙담한 Mia는 본가로 내려가지만 금방 오디션 기회를 얻게 되고, Seb은 그런 Mia를 오디션장까지 끌고 간다. 오디션을 마친 뒤 그들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그때 Mia는 Seb에게 "Where are we?"라고 묻는다. "우린 어디쯤 있을까?"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물음은, 내겐 비단 그들의 관계만을 묻는 질문처럼 들리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어디인지, 여전히 라라랜드 안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라라랜드는 이미 끝난 건지 묻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어지는 대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함께이기에 의미 있던 그 몽상의 세계는 끝났다. 라라랜드 속에서는 사랑스럽기만 하던 그리피스 천문대가, 현실에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5년 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꿈을 이뤄낸 상태로 재회한다. 자신의 재즈 클럽을 연 Seb은 유명한 배우가 되어 자신의 클럽을 방문한 Mia를 발견하고, "Welcome to Seb's."라는 말과 함께 연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함께일 수 있었던 세계를 상상한다. 함께 꿈을 이루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데이트를 나가는, 그런 세계, 끝맺어지지 않은 라라랜드. 그러나 얄궂게도 그 세계와 현실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우리는 여러 가능했던 세계 중 단일한 세계만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걸어온 세계를 계속 걸어나가야만 할 때, 다시 멈추지 않고 흐르는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 사랑했던 둘은 웃으며 서로를 배웅한다.


물론 이를 언어화하여 인식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인생의 비가역성과 유일성을 천착하곤 했다. 하필 이 세계에 살고 있다는 무력감. 가능했던 다른 모든 갈래는 이 세계에 실현되지 않은 채 손아귀 저편에 남아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매 순간의 무게와 지나온 순간에 대한 향수. 무수히 많았던 가능성 중 바로 이 세계가 실현돼버렸다는 아쉬움. 이미 내가 바라던 삶을 살 수는 없게 된 사람이라는 자각.

결국 이 세계는 부조리하다. "잠자릴 함께할 순 있어도 꿈조차 같이 꿀 순 없(쏜애플 - <한낮> 中)"다. 설령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 해도, 현실이 그 세계를 비집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끝에 꿈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틈새로 들어온 커다란 현실에 몽상의 세계는 이미 조각나버려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렇지 않을 수 있었을 것만 같은 어떤 세계들은 상상 속에 부유하고, 그 세계들을 잡아보려 쳐대는 몸부림은 스스로를 더욱 좌절시킨다. 그렇게 자각하게 된 '내가 사는 세계'는 오직 나만이 현상하는 세계이므로, 끝내 극복되지 않을 외로움은 극치에 닿는다. 

이 영화가 눈부시면서도 쓸쓸한 건, 이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바로 그 잔인함을 다만 세련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물론 <라라랜드>를 걸작으로 만드는 것이 이 영화에서 읽히는 철학뿐만은 아니다. 과해지지 않는 지점에 적확히 멈추어서 구현해낸 미장센은, 시청각 매체로서의 영화가 이뤄낼 수 있는 최고의 지점에 다다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자칫하다가는 촌스러워질 수 있었을 특유의 다채로운 색 활용과 강렬한 색 대비는 스크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색색으로 화면을 수놓으며 군무를 추는 오프닝 신, LA의 "Magic Hour" 때 펼쳐진 보라색 밤을 배경으로 한 Seb과 Mia의 탭댄스 신 등. 더불어 배경 조명의 페이드아웃과 함께 위에서 떨어지는 핀 조명 등, 이질감을 줄 수 있는 시각적 연출들 역시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든다. 치밀하게 연출된 배우들의 동선과 카메라 워크, 그리고 그 요소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세트는 오차 하나 없는 완결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요소들이 합쳐져 장면의 공기와 캐릭터들의 감정에 완벽히 조응되는 미장센들이 연속된다.

음악 역시도 나무랄 데 없다. 앞서 언급한 그 인상적인 미장센들에 맞춤 제작된 음악들이 다양한 장르에 섞여 이어지는데, 장면에서 음악을 떼어낼 수도, 음악에서 장면을 떼어낼 수도 없을 만큼 서로 완벽하게 합을 이룬다. 뮤지컬의 리프라이즈처럼 하나의 테마가 변주되며 서사의 반복과 변이를 드러내는 것 역시도 인상적이다. 의도되었으나 어색하지 않은 각운들은 잔잔한 이야기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각 곡들의 멜로디 역시 훌륭하다.

각 요소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라라랜드>는, 가히 완벽하다고 칭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를 "시간의 시청각 예술"로 정의하는 나의 영화론에서, 이 영화는 영화라는 장르가 갖춰야 할 모든 것들을 갖춘, 장르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라라랜드>가 드러내고 있는 삶의 부조리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부조리함에 압도된 채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나는 이 영화가 이 세계를 다루는 방식, 즉 어떻게 스크린에 황홀함이 떠올라 있는지가 그러한 비관주의와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본다. 이 세계의 원리는 잔혹하다. 하지만 우리가 <라라랜드>를 아름답다고 느껴 마지않듯이, 아무리 부조리한 세계일지라도 그 위에 어떤 색, 어떤 소리, 어떤 관점을 입히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고, 춤을 추고, 글을 쓰고, 연기를 한다면, 그렇게 절망과 싸우며 삶에 색을 입히고 소리를 입히고 자신만의 시야를 만들어낸다면, 어쩌면 세계는 충분히 살아볼 가치가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이 글이 좋았다면 커피 한 잔 값으로 그 마음을 표현해 주세요.
작은 격려가 다음 글을 쓰는 이유가 되어 줍니다.
후원은 블로그 운영비를 제외하고 전액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부됩니다.

커피 한 잔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