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örper>
내 몸이 ‘나’라는 존재와 결합한 것은 필연적인가? 내 영혼과 내 육신의 결합이 우연적이라면, 내가 가진 종적(species), 인종적, 성적 특징들 역시도 우연의 결과물이 되는 것 아닌가?

사샤 발츠의 <Körper>는 그녀가 감독한 ‘몸 3부작’ 중 하나이다. ‘Körper’는 독일어로 ‘육체’를 뜻하는데, 작품의 제목처럼 이 작품은 인간의 육체에 관한 면밀한 묘사를 특징으로 가진다. 그 묘사들의 끝과 시작에 놓인 것은 ‘인간이 가지는 육체의 우연성’에 관한 통찰이다.
<Körper>에서 무용수들의 육신은 학대당한다. 마구 꼬집히기도 하고, 옆으로 뉘여 재단 당하기도 한다. 다른 무용수에 의해 거꾸로 들려 몸속의 물을 전부 뱉어내기도 하며, 강박적인 행동을 마구 반복하기도 한다. 이런 학대는 관객이 육체의 물성에 주목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물성이란, 영혼과 결합한 고귀하고 주체적인 신체가 아닌 마치 정육점의 고기와도 같은 수동적이고 거죽 그 자체일 뿐인 신체의 성질을 의미한다.
물성의 강조는 인간의 신체를 마치 동물의 그것과 다를 바 없게 사용하고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첫 장면에서, 여러 명의 무용수가 벽에 붙어 꿈틀댄다. 그들은 서서히 움직이며 몸부림치는데, 마치 포르말린에 절인 동물들을 보는 듯한, 또는 죽기 직전 발악하는 애벌레를 보는 듯한 감상을 준다. 작품이 진행될수록 이런 느낌은 짙어진다. 알, 또는 알로 표상된 장기가 인간의 신체에서 나오는 것은 알을 낳는 동물들과 장기를 적출당하는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신체에 가격이 매겨져 마치 정육점의 고기처럼 팔리는 모습은, 결국 인간의 육체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은유이다. 일의 자리까지 세세하게 값을 매겨 표현함으로써 던지는, 인간의 신체가 결국 우리가 먹는 고기와도 다를 게 없다는 사샤 발츠의 전언은 몹시 불쾌하다. 하지만 이 불쾌감의 끝에 어째서 인간의 신체는 동물의 그것보다 고결한지에 관한 의문을 마주하게 된다.
사샤 발츠는 물성의 강조를 통해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육신을 구별한다. 이어 우리와 우리의 신체가, 또 언어 표현과 우리의 신체가 우연으로 결합한 것임을 표현한다. 이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작품에 두세 차례 등장하는 발화와 신체 부위 지시의 불일치 장면이다. 팔뚝을 가리키며 복부(stomach)라고 말하고, 목을 꼬집으며 팔꿈치(elbows)라고 말한다. 배를 가리키며 머리(head), 다리를 가리키며 손(hands)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각 신체 부위의 명칭과 발화의 불일치는, 언어 표현과 그 지시체가 우연으로 결합했음을 깨닫게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머리가 머리의 위치에, 손이 손의 위치에, 복부가 복부의 위치에 가있는 것은 필연적인지, 종국에는 나의 정신이 나의 육체를 입은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민하게 한다.
이렇듯 사샤 발츠의 <Körper>를 보고 있으면 “내 몸이 ‘나’라는 존재와 결합한 것은 필연적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내 영혼과 내 육신의 결합이 우연적이라면, 내가 가진 종적(species), 인종적, 성적 특징들 역시도 우연의 결과물이 된다. 우리는 정육점에 팔리는 고기처럼 묘사된 우리의 신체를 보며 우리가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마치 홀로코스트를 표현한 것 같은 반복적 동작과 학대, 대상화를 보며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인종 차별과 인종에 기반을 둔 무수한 폭력을 돌아보게 된다. 한편, 남자라는 이유로, 또 여자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시선과 폭압을 성찰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성 무용수와 여성 무용수가 서로 마주 보며 거울 속에 포개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작품 속 공간이 여성의 자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공간이 이미지적으로 자궁과 유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작품 내내 들려오던 진공청소기 소리와도 같은 잡음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사샤 발츠가 던지고 있는, 인간이 가지는 신체의 우연성에 관한 고찰은 그 결합의 발아가 되는 공간에서 표현됨으로써 보다 강력하게 제시된다. 그리고 그렇게 감상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의 육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정신과 나의 육체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우연히 가지게 된 나의 육체에서 말미암는, 정당화되지 않는 행동들을 얼마나 많이 하며 살아왔는가? ….
이 글이 좋았다면 커피 한 잔 값으로 그 마음을 표현해 주세요.
작은 격려가 다음 글을 쓰는 이유가 되어 줍니다.
후원은 블로그 운영비를 제외하고 전액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