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
일련의 작품들에는 칸딘스키가 가졌던 고뇌와 고찰, 그리고 노력이 묻어 있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을 찾는 데 걸린, 또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 포개져 있었다.

미술에 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으레 칸딘스키를 꼽는다. 그의 그림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강렬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추상회화의 선구자로서 왜 추상화를 그리는지 명확하게 설명해낸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칸딘스키와 그의 화파인 청기사파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뮌헨의 렌바흐하우스는 내게 천국이었다. 하지만 칸딘스키의 어떤 개별 작품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칸딘스키가 그려온 일련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경험 그 자체였다.
그 일련의 작품들에는 칸딘스키가 가졌던 고뇌와 고찰, 그리고 노력이 묻어 있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을 찾는 데 걸린, 또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 포개져 있었다.
1년, 한 달, 짧게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나는 결국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자문하며, 또 나는 그 지향점으로 한걸음이라도 내디뎠는가 돌아보며 조급해지고는 한다. 그 조급함에 목이 조여올 때, 렌바흐하우스에서의 하루를 떠올린다. 칸딘스키가 그랬듯, 어쩌면 그 방향을 찾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리고, 그 어딘가에 도달하기까지 또 다른 수십 년이 걸리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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