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 콘서트장 앞에서 핫팩 팔아서 118만 원 벌기

소비재 시장은 방대하다. 장사는 위대하다.

GD 콘서트장 앞에서 핫팩 팔아서 118만 원 벌기
Photo credit: Damien Paeng
💡
Disclaimer: 본 프로젝트는 관할 부처의 계도에 따라 사유지에서 일체의 통행 방해 없이 이뤄졌으며, 발생한 소득은 2026년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기타 소득으로 신고될 예정입니다.

"노상에서 물건을 팔아본 적이 있는가?"

난 이제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스토어에서 치실도 팔아보고 대학생들에게 FastFailer라는 린스타트업 스터디 프로그램도 팔아봤지만, 고객을 직접 마주하고 현찰과 실물의 제품을 주고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누군가 내게 "창업할 생각이 있는가?" 물을 때마다 "그럴 생각이 없기도 하지만, 만약 한다면 스타트업보다는 장사를 해 볼 것 같다. 방대한 소비재 시장을 체감해 보고 싶다."고 답하곤 했다. "많은 사람이 스타트업을 더 멋있다고 여기지만, 내게는 장사가 더 위대해 보인다."고 덧붙이며.

메뉴판을 훑는 눈빛, 살까 말까 망설이며 옴짝대는 입, 그러다가 꺼내는 현찰... 그리고 그 현찰이 내 주머니 안으로 들어올 때의 짜릿함. 고작 네 시간 남짓의 이 장사가 이날을 내 인생 가장 특별한 일요일로 만들어줬다.


Photo credit: Damien Paeng

3월 29일 토요일, GD의 콘서트 <Übermensch>가 열리는 고양종합운동장 근처 편의점과 대형 마트로 핫팩을 찾아다녔다. 전날 다이소에서 샀어야 했는데, 뭐가 필요한지는 고민하지 않고 뭐 입고 갈지만 신나게 고민했던 게 화근이었다. 도저히 3월 끝 무렵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추위에 신경은 곤두서고 콘서트를 즐길 자신은 점점 없어졌다. 하지만 어디에도 핫팩은 없었다. 이미 다 팔렸다, 매대에서 뺐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누구라도 팔아주기만 하면 고마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팔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다음 날 <THE GLOW 2025> 때문에 일산에 또 와야 했고, 쿠팡으로 시킨 다음에 안 팔리면 반품하면 그만이니 - 쿠팡맨께는 죄송하지만 - 리스크는 사실상 0이었다.

15시 45분, 쿠팡으로 핫팩 600개를 시켰다. 총 175,800원. 개당 300원 조금 안 되는 가격. 그리고 세트 구성을 위해 '꿀템' 방석 핫팩을 200개 시켰다. 총 210,650원. 개당 1,000원 조금 더 되는 가격. 드디어 장사를 해 보는구나 설레어 하며, 하지만 핫팩이 없어 추위에 벌벌 떨며 GD를 영접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문 앞에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박스를 하나씩 뜯어가며 수량을 확인했다. 수량 확인을 마친 뒤 가지고 내려가려는데 박스는 뜯어지고 캐리어는 안 끌렸다. 평소에 핫팩을 잘 안 써서 무거울 거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는데, 핫팩이 하나에 80그램, 방석 핫팩이 하나에 240그램이었으니 다 합치면 96킬로그램이나 되는 물량이었다. 무모했다. 낑낑대며 차에 실었다.

Photo Credit: Damien Paeng

큰 캐리어에 가득, 그 옆에 또 한 아름 흰색 핫팩 봉투와 검은색 방석 핫팩을 싣고 일산으로 향했다.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지 고민하며 내달리는 길, 돌풍과 눈보라가 차를 때렸다. 모르긴 몰라도 불티나게 팔리겠거니 생각했다.

전날 주차했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챙겨온 칼로 박스를 뜯었다. 단출하게나마 가격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Photo credit: Damien Paeng

두 번째 창업에서 배운 걸 한마디로 정리하면 'Fast Fail'. 답은 고객에게 있으니, 뭐가 됐든 빠르게 시도하고 빠르게 실패하자 다짐해 왔다. 하지만 가격 책정에는 망설임을 거둘 수 없었다.

한 개에 2,000원은 쌌고, 3,000원은 비쌌다. 두 개에 5,000원이 적당해 보였는데, 그러자니 핫팩 두 개에 방석 핫팩 하나를 10,000원에 파는 묶음 상품의 특장점이 죽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예 가격을 올려서 핫팩 세 개에 10,000원, 방석 핫팩까지 묶음으로 15,000원에 팔아볼까도 고민했다.

그러다 다시 'Fast Fail'로 돌아왔다. 안 팔리면 가격을 낮추고 잘 팔리면 가격을 높이면 되는 것 아닌가. 아래와 같이 가격을 정하고 얼른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네임펜으로 적은 글씨가 너무 얇아 걱정도 했지만, 그마저도 'Fast Fail' 해 보면 되는 일이었다.

Photo credit: Damien Paeng

목을 정하는 데에도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고양종합운동장 한 귀퉁이에 가격표를 들고 5분 정도 서 있어 봤다. 지나가며 흘긋 쳐다보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뿐이었다. 유동 인구가 너무 적었다. MD(Merchandise) 줄 옆에 가서 팔아볼까도 생각했는데, 왠지 보안요원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대화역에서 고양종합운동장으로 갈 때 무조건 지나치는 길목인 고양종합운동장 사거리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거리 앞 횡단보도에 자리를 잡자마자 마수걸이를 했다.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그도 잠깐, 공무원 한 분이 오셔서 공도에서 장사하면 안 된다고 우리를 계도했다. 마침 옆에 가판을 펼쳐놓고 장사하는 분들이 계시길래 그쪽으로 옮겨서 장사하는 건 괜찮은지 여쭤봤는데, 사유지는 단속을 안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자리를 살짝 옮기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Photo credit: Naver Map
Photo credit: KakaoMap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흐름이 끊길 만하면 한두 사람이 와서 핫팩을 사갔다. 장사를 하는 네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옆 가판 아주머니는 독기 서린 눈빛으로 우리를 쏘아보며 "빨리 꺼지"라고 말했다.

재고가 떨어졌을 땐 걸어서 15분 걸리는 주차장까지 왕복 20분 만에 주파했다. 심지어 핫팩을 캐리어와 쇼핑백에 가득 욱여넣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손짓 발짓을 써가며 방석 핫팩을 설명했고, '누안티에(暖贴, 핫팩)'를 외치며 호객도 했다. 인도에서 '빠니보틀(पानी bottle, 물병)'을 외치며 물을 팔던 친구들처럼, 무미건조한 말투로 "Hot pack, hot seat!"를 외쳤다.

손님들의 반응을 봐가며 가격표를 두 번 바꿨다. 재고도 두 번이나 채웠다. 그리고 그 재고마저 다 떨어졌을 때 장사를 마무리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는 네 시간 정도, 쿠팡으로 핫팩을 주문한 지는 꼬박 하루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차에 재고도 많았고 유동 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지만, 다음 일정과 체력을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이미 충분히 많이 팔았다.

장사 마칠 당시의 인파. Photo credit: Damien Paeng

집에 돌아와 세어 보니 네 시간 동안 핫팩 330개, 방석 핫팩 100개를 팔았더라. 수중에는 돈이 약 148만 원 있었다. 그중에 거스름돈을 만들기 위해 뽑았던 현금 9만 원을 빼고 거기에 다시 원가를 빼니 118만 원 정도가 남았다. 종합하면 실제 매출 약 139만 원, 영업이익 약 118만 원, 영업이익률 84.7%. 그리고 재고자산 핫팩 30개. 한 시간에 30만 원 가까이 번 꼴이다.

Photo credit: Damien Paeng

찰나에 불과하게나마 장사꾼으로 살면서 다양한 것을 느끼고 배웠다.

1. 잘 팔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포착하고 뛰어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그렇게 장사를 잘했나?" 묻는다면, "잘 팔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답할 것 같다. 겸손이 아니라 진짜다.

내가 사는 동네의 3월 26일 최고 기온은 24도였다. 완연한 봄 날씨. 불과 사나흘 만에 기온이 수직으로 떨어진 것이다. 주말에 춥다는 걸 알아도 그게 롱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의 추위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우리 같은 사람이 한둘이었겠는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콘서트를 불편하게 보고 싶지 않아 비교적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을 테니 더욱이.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우리가 콘서트를 봤던 첫째 날에는 콘서트장 주위 어디에서도 핫팩을 구할 수 없었다. 때아닌 한파에 재고가 없었던 것이다. 장사를 했던 둘째 날에는 사정이 좀 나아져 근처 편의점 몇 군데에서 핫팩을 팔았지만, 재고가 금방 동났다. 독점에 가까운 시장에서 방석 핫팩이라는 꿀템까지 팔았으니 장사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었다.

콘서트라는, '비싸고 일회적인 경험'을 이미 구매한 사람들이 타겟이었다는 것도 주효했다. 최소 16만 원, 많게는 몇백만 원을 내고 온 사람들에게 콘서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만 원의 투자는 소소했을 것이다.

손님의 80~90%가 중국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가볍게 옷을 입고 왔는데 갑자기 추워져 대비할 방도가 없는 사람들. 근처 편의점을 들러보는 게 최선인 사람들. 수백만 원을 들여 GD를 보러 한국에 오는 사람들.

잘 팔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활용한 것이 이번 성공의 제1요인이다.

2.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고, 나는 거기에 비교적 능한 편이다.

이번에 대담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술했듯 일산에도 원래 가야 했고, 재고가 쌓이면 쿠팡으로 반품하면 됐다. 핫팩 60개입 한 팩을 뜯어 6개만 팔아도 손해는 보지 않는 구조였고, 정말 하나도 팔지 못한다면 다음 겨울에 직접 쓰면 됐다. 시간과 체력만이 비용이었는데, 그 정도는 경험과 기대 수익에 투자할 만했다.

리스크가 파악되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손해 볼 게 없다면 행동하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꽤 무모한 도전을 성공으로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나에 대해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꽤 능하다는 것. '안 팔리면 반품하자'는 생각과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그리 특별한 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 맞다. 하지만 늘 '우리의 행동을 막고 있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그 장애물을 최소의 비용으로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행동해 온 것이 나의 습관이자 강점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3. 무언가를 해 보기 전과 후는 질적으로 다르다.

일단 해 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그게 설령 네 시간 짜리 경험에 불과하더라도.

이제는 동양인으로 보이면 중국어로 말을 거는 이유도, 내가 쥐고 있는 현금을 뺏어가다시피 하며 거스름돈을 주는 마음도, 어차피 안 팔릴 것 같은데 절대 할인해 주지 않는 심리도 대강 안다.

물건을 파는 데에 가판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도, 하지만 눈높이에 물건이 있고 특히 만져볼 수 있을 때 더 잘 팔린다는 것도. 돈의 단위가 딱 맞아떨어지도록 세트를 구성하면 매출이 유의미하게 증대된다는 것도 몸소 느꼈다.

Photo credit: Damien Paeng

소비재 시장이 얼마나 큰지도 실감했다. 물건을 팔면 팔린다는 걸,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배웠다. 스마트스토어에서 치실을 팔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핫팩이 네 시간 만에 이만큼 팔린다면, 도대체 일 년 동안에는 얼마나 팔릴까 묻게 됐다.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지 않았다면 절대 깨닫고 느끼고 묻지 못했을 것들이다.

故 정주영 회장이 "이봐, 해봤어?"를 말버릇으로 달고 살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다.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구사하지 못한다면 탁상공론일 뿐이다. GD의 <소년이여> 가사처럼, "딱 하루만 그 입장이 돼" 보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안다.


장사를 마치고 <THE GLOW 2025>에서 장기하의 공연을 양껏 즐겼다. GD 콘서트, 핫팩 장사, 락 페스티벌까지. 내 인생 가장 즐거운 주말이었다.



이 글이 좋았다면 커피 한 잔 값으로 그 마음을 표현해 주세요.
작은 격려가 다음 글을 쓰는 이유가 되어 줍니다.
후원은 블로그 운영비를 제외하고 전액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부됩니다.

커피 한 잔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