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과 현대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낙관에서 비롯된 이 사회의 시스템은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소비 체계를 만들어냈고, 이제는 속칭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 체계 속에 존재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스톱과 현대자본주의
Photo credit: Damien Paeng

어제오늘,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화투패를 들었다. 우리 집은 금복 산업 제조의 하우스용 화투가 구비된, 고스톱에 꽤나 진심인 가정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인생을 통틀어 컴퓨터 게임을 한 시간보다 고스톱을 친 시간이 더 많은, 한때 고스톱 신동으로 불렸던 사내다. 우리 집에서 고스톱은 놀이가 아니라 전투다.

고스톱에도 실력이란 게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운에만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물론 출발선은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더 좋은 패를 들고, 누군가는 더 나쁜 패를 들었을 테니. 그러나 순간순간 어떤 패를 내릴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더 나아가 판 전체의 흐름을 읽어야 하며, 결정적으로는 점수가 났을 경우 고를 할지 스톱을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주어진 패와 턴에 한 번씩 까지는 화투짝은 운일지언정,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살리는 것은 개인의 실력이란 소리다.​

그렇기에, 손에 들어온 광과 쌍피가 낯설 정도로 오랜만에 치게 된 어제의 전투에서 승전고를 울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실력은 곧 숙련도와 실전 감각의 곱이고, 숙련도는 그대로일지 모르나 실전 감각이 많이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전장으로 나선 나에게 주어진 건 참혹한 패배뿐이었고, 아빠에게 7,000원, 엄마에게 4,000원의 빚을 진 채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장 중반 아빠에게 12,000원 엄마에게 7,000원의 빚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멘탈을 놓지 않고 꽤나 훌륭하게 분투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전장을 빠져나오며 부모님께 선전포고했다. 내일은 기필코 이 빚을 다 없애리라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의 끝에 선 지금, 200원이 내 수중에 있다. 꾸역꾸역 빚을 갚아 결국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결코 돈을 잃은 채로 명절을 끝내지 않겠다는 결단 하에 극도로 높아진 집중력은, 상대방이 든 모든 패를 읽을 수 있었던 고스톱 신동 시절의 나로 시간을 잠깐 돌려주었다. 과거의 내가 깃들었음에도 흑자전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줄곧 이기다가도 한 번 잃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거대한 빚, 그 느낌이 주는 패배감에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고스톱을 치며,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시민의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자본주의는 신용을 기반으로 한 대출과 이자에 그 기반을 둔다. 발전에 관한 낙관에서 비롯된 이 사회의 시스템은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소비 체계를 만들어냈고, 이제는 속칭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 체계 속에 존재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집, 차, 혼수 등을 직불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 않나. 신용이 안 좋은 사람에게 BNPL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기업들이 생겨나는 것만 봐도, 이 유구한 빚의 전통이 당분간 꺼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평생 꿈도 꿔보지 못할 집과 차를, 아직 가지지도 않은 돈으로 사게 해준다는 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경제학을 전공한 시장주의자로서 이 말에 동의한다. 현대사회가 소비를 조장하네, 토지는 애당초 국가가 소유했어야 하네 해도, 결국 신용을 통한 소비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가.​

하지만, 구조와 체계가 정당하다는 것이 그 사회와 사회 성원을 성찰할 때 마주하게 되는 감정적 잔여물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꾸준함의 표상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에 네 시간씩 글을 쓸 때, 어떤 이들은 하루에 네 시간씩 꾸준히 빚을 갚아나간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어떤 청년은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빚을 등에 업고 떠밀리듯 출근하게 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을 뿐이었던 한 가장은 가정을 위해 평생 빚쟁이로 살아가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구절대로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다.

경제학의 가정대로 인간이 합리적인 동물이라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은 조삼모사 이야기의 원숭이와 다를 바 없는 멍청한 영장류에 불과하다. 할부로 구매한 재화에 대해 매달 행복감을 느끼는 인간은 없다. 뭐, 감가 상각된 행복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내가 보기에 소유의 행복은 일순간이다.

이 구조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나는 시장주의자고, 시장주의자로서 '노오력'과 성과주의를 다소 맹신하기까지 한다. 마치 고스톱이 그렇듯, 출발선이 달라도 개인의 선택과 의지, 열정, 그리고 운에 따라 충분히 나아가고 역전할 기회는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뭐가 되었든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너무 처연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글이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내가 이중적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구조적으로 애달프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도, 노력과 성과주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으니.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건지, 더 나아가 둘이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인지조차 모르겠다. 그 답을 숙고하여 찾아내기보다는, 나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나와 닮지 않은 타인의 삶에 열린 시선으로 다가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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