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경>
날끝을 뜨겁게 데운 송곳 같은 음악. 그 송곳에 찔린 유리가 토해내는, 녹아 흐르거나 비산되는 결정들.
요즘 '쇳소리'가 유행이다. 밴드신에서는 실리카겔이 '쇠질'의 대표주자고, 보다 대중적으로는 에스파가 떠오른다.
쏜애플의 그것은 쇳소리지만 조금 더 섬세하다. 그들의 음악은 날끝을 뜨겁게 데운 송곳 같다. 그 송곳에 찔린 유리가 토해내는, 녹아 흐르거나 비산되는 결정들이 귀를 울린다. 밴드의 이름(Thorn Apple)이 잘 녹아든 음악이라고 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쏜애플의 음악은 잘 쓰인 희곡을 떠올리게 한다. 문학적 상상력과 섬세한 표현이 어우러진 가사들 - <남극>, <멸종>처럼 사회적이거나, <이유>, <로마네스크>처럼 시적으로 감정을 승화하는, 또는 <빨간 피터>, <게와 수돗물>처럼 흔치 않은 소재로 만들어진 - 때문만은 아니다. 보컬, 두 대의 기타, 베이스와 드럼이 입체적으로 조응해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낼 때면, 마치 체호프의 희곡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 쏜애플은 새로운 장을 연다. 14년간 베이스를 맡던 심재현이 밴드를 떠난다. 심재현의 마지막 <불구경>, 쏜애플에겐 아홉 번째이고 나에겐 두 번째인 이 공연에서 나는 그 마지막의 시작을 목도했다.
14년이라는 시간은 이리 상상해 보고 저리 상상해 보아도 아득하기만 하다. 쉬이 질리는 성격 탓에 더 그렇다. 음악이 그의 업이라는 점에서 보면 심재현은 한 직장에서 14년을 근속한 셈인데, 그 세월을 어떻게 보내고 또 견딘 걸까?
내가 가봤던 모든 공연 중 음향이 가장 안 좋아서 퍽 아쉬웠지만, 심재현이 고른 셋리스트라서, 그간 봐온 쏜애플의 모습 중 가장 자유분방해서, 그리고 자기만큼 심재현이 떠나는 게 아쉬울 수는 없을 거라는 윤성현의 풀어진 솔직함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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