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스톡옵션 행사기 (feat. Carta)
전직장의 스톡옵션을 마침내 행사했다. 버튼 한 번 클릭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던 애초의 예상과는 다르게 꽤 애를 많이 먹었다. 행사를 마칠 때까지 고민을 놓을 수 없던 지점들도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여정을 쭉 풀어내보고자 한다.

부침이 많던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뒤로하고 또 3개월이 거의 다 지날 무렵, 전직장의 스톡옵션을 마침내 행사했다. 버튼 한 번 클릭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던 애초의 예상과는 다르게 꽤 애를 많이 먹었다. 행사를 마칠 때까지 고민을 놓을 수 없던 지점들도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여정을 쭉 풀어내 보고자 한다.
0. Carta?
Carta를 처음 알게 된 건 2021년 6월이었다. 한 회사의 면접 과정에 기업 분석 보고서 제출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때 쿼타북을 분석하면서 그들이 벤치마크한 Carta에 관해서도 알게 됐다.
Carta는 주주명부 관리 SaaS다. 기존에 수기 또는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관리하던 주주명부를 보다 쉽게 관리하게끔 해주는 서비스다. 그 편리함으로 무려 74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 가치를 평가받은 그들이다. 그래서 나는 스톡옵션 행사도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적어도 한국 거주민에게는.
1. 나의 스톡옵션
어쨌든 Carta를 처음 알게 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Carta를 통해 관리되는 스톡옵션을 받았다.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나의 스톡옵션에 관해 밝힐 수 있는 선에서만 밝히자면, 입사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곧장 스톡옵션(이하 입사 스톡옵션)을 받았고, 미국 회사의 스톡옵션이기 때문에 Cliff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승진하며 Cliff가 없는 스톡옵션(이하 승진 스톡옵션)을 한 번 더 받았다. (위에 쓴 내용은 전직장의 채용공고와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공개된 정보다. Cliff와 Vesting에 관해서는 이 영상, 또는 이 글을 참고하면 좋다.)

한국 스타트업은 보통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전직장의 경우 PTEP(post-termination exercise period)를 주었다. PTEP란 말 그대로 계약이 끝난 후에도 일정 동안은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유예기간이다. 링크한 글에서 언급된 90일과 대동소이한 기간의 PTEP가 주어졌다.
2. 행사할 결심
회사의 현재 가치보다 행사가가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행사한다는 것 자체에 의심을 하지 않았다. 유일한 고민은 달러 강세였다. 그래서 기다렸다. 우습게도 퇴사할 무렵에는 1,330원쯤 되던 환율이 3개월 후엔 1,380원 언저리가 되더라. 1,000달러어치를 행사할 때마다 5만 원의 손해를 보게 됐다. 역시 주식과 달러는 분할 매수해야 한다.
하여튼 더는 미룰 수 없으니 행사할 결심을 하고, Carta에서 Exercise 버튼을 눌렀다. 얼마 어치를 행사할 건지 또 미국에 세금을 얼마 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서명을 남겼다. 그러자 행사 신청이 잘 됐다며, 전직장측 담당자가 행사를 허가하면 추후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고 안내 메일이 왔다. 이때 바로 카드 결제로 연결됐다면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화끈하게 행사를 위한 금액을 결제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며 새삼 결제까지 아무 걸림돌이 없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결제까지의 시간이 생기자, 문득 이 주식들의 출구 전략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스톡옵션 계약서를 검토해 보기 시작했다. 내가 찾는 건 Tag-along Right과 같은 소수 지분 보호 조항이었다.
상장된 주식의 경우, 소수 지분이라고 그 주식을 팔지 못하는 경우는 잘 없다. 유동성이 정말 극악인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것이 상장기업이 'Public Company'라고 불리는 이유다. 공개된 곳에서 누구나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그러나 비상장기업, 곧 'Private Company'는 경우가 다르다. 주식 거래가 거래소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산 주식을 다시 팔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구찌 의자 같은 거랄까. 장부가가 높더라도 살 사람 또는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적당한 플랫폼을 찾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있는 게 Tag-along Right, 곧 동반매도참여권이다. 쉽게 말해 '네가 팔 때 나도 팔 수 있는 권한'. 이 권한이 없다면 다음과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회사 A의 지분 90%를 가진 주주 X가 회사 B에 자기 주식을 전부 매도하려 한다. 회사 B는 지분 90%만으로도 회사 A에 대한 지배력을 전적으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나머지 10%의 지분을 가진 주주 Y의 주식은 사지 않으려 한다.
만약 주주 Y가 Tag-along Right을 갖고 있고 또 이를 행사한다면 주주 X가 회사 B에게 자신의 주식만 홀랑 팔아먹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없다면? 최악의 경우 주주 Y의 지분 10%는 그가 죽는 날까지 단 1원에조차 팔리지 않을 수 있다. 회사 B는 굳이 나머지 지분 10%를 살 유인이 없고 - 유인이 없으니 안 샀던 것일 테고 - , 이 주식을 다수의 잠재적 매수자에게 보여줄 거래소도 없을뿐더러, 내가 산 주식이 다시는 팔리지 않을 위험을 감수하는 매수자는 적을 테니 말이다.
기업을 인수할 때 소수 지분까지 전부 매수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적은 돈을 들여 소수 지분 주주를 주주명부에서 제거할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이유, 그리고 그러한 소수 지분 주주들이 대개 회사의 직원들이기 때문에 인수 후의 사기 관리를 위한 것이 다른 하나의 이유일 테다. 만약 내가 전자의 기제를 신뢰했다면 이 모든 고민은 하지도 않았을 테고, 이미 회사를 떠난 나는 후자의 기제를 이루는 요소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역시 기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직장의 IPO 가능성을 고려하면 소수 지분 보호 조항을 찾을 필요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애당초 IPO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면 회사에 남아 IPO에 이르기까지 더 크게 이바지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편이 합당했을 것이다.
전직장의 CEO를 위시한 다수 지분 주주들의 선의를 믿어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존경하고 또 믿는다. 솔직히 내 지분 정도야 그들이 사비로라도 사주리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창업을 하며 배운 한 가지가 있다면 "프로의 세계에서 도장 찍힌 계약서에 적힌 내용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선함에 기대어 의사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내 마음에 적신호가 켜졌다.
3. 발견!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행사가 허가되었다. 당연히 카드 결제가 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Wire Transfer로 Carta의 계좌에 돈을 보내야 했다. 버리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눈 딱 감고 쓸 만한 돈이었지만, 땅 파서 나오는 양의 돈은 또 아니었기 때문에 며칠 동안 정말 열심히 고민했다.
그 돈의 기회비용, 내가 생각하는 매도 가능성, 전직장에 대한 나의 애정,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의 스톡옵션을 행사해 본다는 경험, 내가 일한 시간에 대한 정당화, 얼마일지 모르는 주식 취득에 대한 근로소득세 등의 모든 요소를 고려했을 때, 딱 N달러어치 정도 - 굳이 밝히지 않겠다 - 만 행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행사를 취소하고 그중 일부만 다시 행사할 수 있는지 찾아봤다. 내가 법적인 측면은 고려하지 않은 채 편리함만을 생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능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내가 만약 행사를 취소하고 싶다면 전직장의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하여 행사를 취소하겠노라고 말을 해야 했다. 미국에 있는 담당자, 곧 CFO께 연락해 행사를 취소하고 다시 행사를 허가받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고, 체면도 체면인지라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날 중 하루, 습관적으로 Carta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행사하지 않은 스톡옵션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내가 Exercise를 눌렀던 그 스톡옵션은 입사 스톡옵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승진 스톡옵션이 있었다! 그리고 승진 스톡옵션 전체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돈은 거의 딱 N달러였다.
PTEP가 끝나는 시간은 태평양 일광 절약 시간(PDT) 화요일 23:59, 그리고 승진 스톡옵션을 발견한 건 그 전주 토요일이었다. 바로 Exercise 버튼을 눌렀고, 다행히도 월요일 오전, 그러니 PDT로는 일요일 오후에 허가가 났다. 알고 보니 그때 CFO가 한국에 계셨단다. 천운이었다.
4. Wire Transfer
혹시 당신이 Carta에서 스톡옵션을 행사해 Wire Transfer를 해야 하는 한국 거주민이라면 충분한 기간을 두고 하길 강력히 추천한다.
Wire Transfer,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다. MOIN이라는 해외송금 서비스도 알고 있었고, 여차하면 은행에 가서 보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MOIN도, 나의 주거래은행도, 그리고 부랴부랴 알아본 센트비도 ACH(Paper & Electronic)만 지원하지, Wire Transfer는 지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돈을 보내는 데에 최대 48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Wise에 이르렀다. 세계 1위 서비스답게 이들은 Wire Transfer를 지원했다. 드디어 답을 찾은 나는 잽싸게 Carta로 돈을 보냈다. 내가 Wise에 ACH로 보내면 다시 Wise가 Carta에 Wire Transfer로 보내주는 옵션의 수수료가 가장 저렴했으나, 내가 Wise로 보낼 때 얼마나 걸릴지가 담보되지 않는 것이 불안해 수수료를 조금 더 내고 트래블월렛 체크카드를 통해 결제했다. 송금 수수료가 무려 8% 정도 되었지만, 약 7시간 만에 Carta의 계좌에 돈이 도착했으니 몫을 충분히 해냈다고 생각한다.
한편 그 와중에도 좌충우돌이 있었다. Carta의 송금 안내문(Wire Instructions)에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받는 돈이 행사에 필요한 금액 이상이어야 하니, 수수료를 잘 계산해서 보내라"고 강조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Wire Transfer는 수취에도 수수료가 부과된다더라. 혹시 몰라 N달러에 20달러를 더해 보냈다.

5. 끝나지 않은 이야기
And Damien received his stock certificates and lived happily ever after…일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주주가 아니다.
월요일 밤, Carta가 돈을 받자마자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제목은 "Insufficient funds received, wire balance to complete your exercise"였다. (N+20)달러를 받았는데, 입사 스톡옵션을 행사하기에 불충분한 금액이니 돈을 더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돈을 보내자마자 해당하는 이체 명세를 승진 스톡옵션 쪽에 써넣었기에 알아서 잘 수정이 되리라 믿고, 20달러를 돌려달라는 메일을 Support Center에 보냈다.
수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답신이 와 있었다. 골자는 "입사 스톡옵션을 먼저 행사했기 때문에 입사 스톡옵션이 완전히 행사되기 전까지 들어오는 모든 돈은 입사 스톡옵션 쪽으로 향한다. 두 스톡옵션 모두 권리 만료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알아서 돈 잘 보내라."였다. PDT 화요일 23:59는 KST 수요일 15:59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8시간 남짓이었고, 설령 두 스톡옵션을 모두 행사하는 결정을 당장 내린다고 해도 Wire Transfer를 완료하는 건 불가능했다.
곧장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국제전화였지만 전화비를 신경 쓸 새는 없었다. 이해하기 쉬운 억양을 구사하는 아주 친절한 상담원이 "시스템상 그걸 바꿀 방법은 없다. 설령 전직장측에서 입사 스톡옵션 행사를 취소해 주어도, 승진 스톡옵션 행사를 위한 돈을 다시 Wire Transfer해야 한다."고 깔끔하게 종결지어줬다. 만약 행사가 완료되지 않으면 환불은 전직장에서 해줄 거라는 말과 함께.
외근을 나가는 버스 안에서 급히 메일을 적어 전직장의 CFO께 보냈다. 아래는 세 줄 요약이고, 본문을 매우 공손하게 적어 보냈다.

혹시 스팸 처리될까 봐 전직장의 매니저를 CC하고 카톡도 따로 드렸는데, 그 카톡이 읽히기도 전에 CFO로부터 회신이 왔다. 간결하지만 그 내용은 명료하고 또 풍부했다.
"지금 당장 법무법인과 함께 이 문제 해결에 착수하겠다. 필요할 경우 이사회에 안건을 부치겠다. Disclaimer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reasonable comfortable하게 느낀다. 너를 위해 'go to bat'해주겠다."
그 후 몇 번의 메일이 오갔고, 현재는 Carta 쪽에서 시스템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길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일단 입사 스톡옵션의 행사는 취소됐고, 20달러는 돌려받았다. 돌려받을 때는 주거래은행의 외환 수취 서비스를 이용했다. 어차피 내 손을 떠난 일이기에 아무 액션을 취하고 있지 않은데, 차주쯤 리마인더를 드려볼까 한다.
6. 배운 점 및 제언
- 스톡옵션 행사는 여유를 두고 하자. 미국 스톡옵션이라면 더욱.
- Wire Transfer로 송금할 때는 그냥 Wise를 쓰자.
- 수취 수수료는 없는 듯하다. 그러나 20달러 정도만 더 보내면 되고, 돌려받는 건 보내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니, 가급적이면 그냥 함께 보내자.
- 스톡옵션 행사 전, 위험성향에 따라 자신의 주식을 보호하거나 Exit을 (준)담보할 수 있는 조항이 있는지 살펴보자.
- 조항이 없다면 다른 Exit 전략을 알아보자. 사실 나는 미국의 비상장 주식 거래소 같은 데에서 전직장의 주식이 거래되는지 제대로 찾아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 그런 의미에서 퇴사할 때 주식을 다시 사주는 회사가 최고인 것 같다. 회사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고.
- 제품 관점에서, 결제까지 걸림돌이 없는 게 몹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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