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
체할 때까지 밀어 넣는 무한리필 메시지.

민족주의도 얘기하고 싶고, 희생도 얘기하고 싶고, 가족끼리의 사랑도 얘기하고 싶고, 트라우마의 극복도 얘기하고 싶고, 국가 권력의 책임도 얘기하고 싶고. 연로하신 보수 선생님의 일장연설을 듣는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기 직전, 함께 보러 간 친구가 내 <헤어질 결심> 해석을 듣고 그건 - 곧 내가 <헤어질 결심>에서 읽어낸 '서사적 전통에 관한 회의'와 '감각적 전통에 관한 회의' - 감독이 의도한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헤어질 결심>이 해석의 측면에서 훌륭한 영화인 이유는 내가 해석한 것을 담아내고 있어서가 아니라, 영화가 그리고 있는 세계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원칙들, 더불어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들이 일관되어 여러 관점에서의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상선언>은 그 대척점에 있는 영화다. 근데 그전에 영화 자체가 심히 재미없다. 범죄 영화, 재난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범인이 죽자마자 동력을 잃고 추락한다. 추락하는 날개의 양쪽에는 이병헌과 송강호라는 엔진이 있지만, 한재림이라는 기장은 멱살 잡고 이 비행기를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한재림 기장은 전도연, 김남길 등의 훌륭한 배우들을 그냥 승객으로 만들어버린다.
영화 속 인물들은 도구적으로 소모된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렇다. 이는 생동하는 캐릭터에서 메시지가 따라나오는 게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도구로서 캐릭터가 이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뭐가 더 중요한지는 영화에 따라, 주안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캐릭터를 도구로 해서라도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영화도 분명 있다. 하지만 <비상선언>이 그래야 하는 영화였는가, 또 그래서 좋은 메시지를 잘 전달했는가에 나는 부정적이다.
동시에 이 영화 속 세계는 일관성이 없다. 왜 굳이 김해 공항이 아니라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가? 자위대가 민항기에 총질하는 게 말이 되는가? 어떻게 치료제의 효과에 관해 한국 정부보다 일본 정부가 먼저 아는가? 치료제의 효과가 의심되어 입국을 막았는데, 환자 한 명에게 단기적 효과를 좀 보였다고 입국을 허가할 수 있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대한민국에 내리지 않겠다는 그 비행기는 그럼 어디로 갈 건가, 미사일 맞고 사라지겠다는 소리인가? 엉성하다 못해 말도 안 되고 조잡한 이 세계는 영화를 보는 내내 한숨만 나오게 했다.
아이의 입을 빌려 전체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너무 위험했다는 사람들의 평이 있었다. 사실 미처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그 메시지가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서 한숨만 땅이 꺼져라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영화가 전체적으로 그랬지만, 특히 그 부분은 메시지와 메신저 모두 최악이었다.
극장이나 영화관에 '갇혀있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번이 정확히 그랬다. 에어컨 값이라고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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