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무조건적 공감 또는 무조건적 해결책 제시가 아닌, 우리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과, 각자가 어떻게 이 찝찝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지가 공유되어 대화가 아주 뜻깊었다.

초여름
Photo credit: Damien Paeng

돌아오는 목요일에 어떤 자리에 나가서 최근에 어떻게 지냈나 공유해야 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무얼 했나 돌이켜 봤는데, 퍽 재미있는 일이 많아 글로도 남겨본다.

가장 먼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부터. 2년 만에 단식을 하고 있다. 어제 12시 45분에 점심 식사를 마쳤으니, 지금 벌써 34시간이 지났다. 48시간을 목표로 하긴 했는데, 여의치 않으면 내일 일어나자마자 보식을 시작할 예정이다. 2년 전에 단식을 했을 때, 보식으로 처음 아몬드를 먹었을 때의 그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몬드가 이렇게 맛있었나?" 생각하게 되는, 정말 태곳적으로 몸의 감각이 돌아간 것 같은 기분. 사실 24시간 넘게 단식을 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성과라 "내가 굳이 왜 더 버티고 있지, 슬슬 그만둘까" 생각을 하다가도, 그때의 그 맛을 다시 맛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 더 해보게 된다.

또 하나의 '2년 만의' 일이 있다. 안경을 맞춘 것. 근데 놀랍게도, 시력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새로 측정된 시력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눈에 피로가 덜 가게끔 더 낮은 도수의 안경을 맞추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셔서 그렇게 했는데, 훨씬 더 잘 보이는 느낌.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원시가 벌써 오나 걱정도 되는데, 아직 원시 올 나이는 아니니까 어떻게 자연적으로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해 보련다.

내가 개설한 넷플연가 모임이 시작되었다. 1회 차 후기가 딱 하나 왔는데, 그 내용이 "완벽...!"이어서 몹시 기분이 좋았다. 돈을 꽤 내고도 아예 불참하는 사람이 30%가량이나 된다는 것도 놀라웠고, 물 흐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신기했다. 물론 내가 원체 커리큘럼 자체를 진짜 이 주제로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게끔 심도 있게 쓴 것도 있고. 어쨌든 생각했던 것보다 내게도 효용이 컸다. 떠들고 돈도 받고.

성시경 콘서트 <축가>를 갔다 왔다. 성시경 라이브 언제 한번 들어보나 생각만 했었는데, 우연찮게 당근마켓에 정가보다 저렴하게 올라온 티켓을 발견하게 되어 바로 양도받았다. 사실 첫 곡 부를 때는 조금 컨디션이 안 좋은 게 아닌가 걱정도 됐는데, 목 풀리고 나니까 날아다니시더라. 요즘 밴드 콘서트만 갔었는데, 발라드 콘서트 오랜만에 가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시 보다 : 한국근현대미술전>을 갔다. 다른 무엇보다도 변월룡 작가를 알게 된 게 수확이었다. 왜 그의 그림이 좋은지 아직도 명확하게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사실과 인상 사이 어딘가에 떨어지는 자신만의 필치로 자신이 본 바로 그 세상을 전달했을 때 생기는 힘이 전달되었기에 좋았다고 느낀 것 같다.

관람 후 함께 전시를 관람한 형과 식사를 했는데, 최근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을 알게 되어 일종의 기쁨을 느꼈다. 물론 상대방도 힘들다는 사실에서 온 기쁨은 아니고, 다만 이 세상에 이런 고민을 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와 비슷한 결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내 근처에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서 비롯되는 기쁨이었다. 무조건적 공감 또는 무조건적 해결책 제시가 아닌, 우리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과, 각자가 어떻게 이 찝찝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지가 공유되어 대화가 아주 뜻깊었다.

몸담게 된 또 다른 밴드인 장노출의 첫 합주도 있었고, 회사에서 비공식 성과 평가도 있었다. 내게 주어진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9월쯤 미국 출장을 갈 것 같기도 하다는 사실도 들었다. 이 많은 일들이 이번 일주일 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다음 주에도 개인적인 약속과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더 더워진 날들에 나는 어디쯤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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