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무한히 연장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셀 수 없는 그 어떤 사건이 나와 포개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재난
By Mimigu at English Wikipedia,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5802807

한 달 전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정주행했다. <지옥>은 초자연적 존재에게 죽을 날을 미리 고지 받은 뒤, 그 일시가 되면 잔혹하게 지옥의 공포를 시연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혼란으로 치닫는 세상을 그린 일종의 디스토피아 군상극이다.

드라마 속의 한 인물이 이 일련의 사태를 '재난'이라고 일컬었던 것이 꽤나 임팩트 있게 다가왔음에도, 나는 끝까지 그 사태의 원인, 곧 '왜 갑자기 초자연적 존재가 나타나 고지와 시연을 일삼기 시작했는가'가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느꼈다. 재난이란 원래 그런 것임을.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것임을. 어쩌면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은. 길을 가다가 누가 나에게 염산을 끼얹을 수도, 내일 일어났는데 별안간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내가 지나가고 있던 길이 무너져내리며 싱크홀이 생길 수도 있다. 재난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초자연적이든 물리적이든, 재난의 앞과 뒤에서 그 재난의 이유는 무용하다. 염산을 끼얹은 사람이 정신병에 걸린 사람일 수도 있고, 눈을 왕왕 비비는 나쁜 습관과 손에 묻어있던 어떤 이물질이 하필이면 포개어졌을 수도 있다. 불운하게도 발밑의 석회암이 다 녹아내릴 때쯤 그 길 위를 지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녕 중요한가.

우리는 결국 두려워해야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을 경외해야 한다. 기도와 공감과 애도는 선택의 영역이다. 그의 강요야말로 오히려 정치적이다. 하지만 두려움과 경외는 시대의 정신이오 살아가는 자의 책무이다. 무한히 연장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셀 수 없는 그 어떤 사건이 나와 포개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그리고 그렇게, 그들이 누구든, 내가 그때 그 장소에 있을 수 있었든 없었든, 기도와 공감과 애도를 하고 싶든 하지 않고 싶든, 같은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일말의 연민이 움터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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