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

컬트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그 속성을 먹이로 삼는다.

<컬트>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中

전자책으로 읽다 보니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뒤표지를 읽게 됐는데, 거기에 적힌 말이 사뭇 인상적이었다. "컬트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그 속성을 먹이로 삼는다. 여기서 말하는 속성이란 바로 우리의 소속되려는 열망, 삶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으려는 열망, 신성한 목적을 지니고 일상을 살고 싶은 열망을 뜻한다. 이런 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저 무시무시한 컬트의 나락으로, 아울러 엉뚱한 대의를 향한 무조건적인 헌신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 된다."

찰스 맨슨, 아돌포 데 헤수스 콘스탄소, 바그완 슈리 라즈니쉬, 짐 존스, 로크 테리오, 데이비드 코레시, 키스 라니에르, 크레도니아 음웨린데, 그리고 마셜 애플화이트까지, 총 아홉 명의 컬트 지도자의 인생을 가능한 낱낱이 파헤치는 이 기획은 "광기가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왜 광기에 휩쓸리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렸을 적 다니던 대전의 큰 교회(당연히 이단 및 컬트가 아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에는 '여(女)선교회'라는 집단이 있었다. 이 집단은 다시 나이에 기반을 둔 기수로 세분화되었는데, 교회는 공식적으로 매주 식사 당번은 몇 기, 청소 당번은 몇 기 등의 당번을 정해 주보(週報)에 띄웠다. 그건 봉사라기보다, 교회라는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남선교회도 존재했으며, 그들도 그들의 일이 있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사리를 분별할수록 그런 관례는 문화도, 봉사도 아닌 착취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머니께 "헌금은 어디다가 쓰고 성도들의 노동을 착취하냐"라고 여쭐 때면 어머니는 반증 불가능한 답을 내놓고는 하셨다. 그즈음 교회에서는 식사 준비를 외주 업체에 맡기기 시작했다.

<컬트>를 읽으며 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정상 종교와 컬트는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구분되는지 고민했다. 가끔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가 그저 거대한 컬트인 것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톰 홀랜드가 <팍스>에 적은 영어에 관한 문구를 빌리자면, 서구의 이성 자체가 "기독교적 전제조건들에 따라 형성되고 단련되었"기에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미끄러진 경사면의 오류 없이도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예시가 마음속에 있지만, 굳이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겠다.


한편으로는 양육의 중요성을 느꼈다. 반증 불가능한 믿음 중 프로이트적 믿음을 거의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소개된 모든 컬트 지도자들이 성장 환경에서의 결여가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성장 환경에서 부족함이 아예 없는 인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반례를 고려하지 못한 결과론적 해석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책에서 언급되듯, "평탄치 못한 양육이야말로 폭력적인 컬트 지도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점은 분명 주지할 만한 것 같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컬트의 추종자들 역시 그런 인물들이다. 그들은 사랑받는다는, 경청된다는, 특별하고 가치 있다는 느낌을 받음으로써 지도자를 따른다. 정상적인 관계에서의 정상적인 감정이 한번 형성되면, 컬트 지도자는 아주 서서히 심리를 조작하여 자신을 의존하게 만들고 이내 착취한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감정들이 비정상적인 관계에 자리한다.


왜 컬트를 만들어서는 안 될까? 왜 사람들이 나를 무작정 따르도록 해서는 안 될까? 왜 나를 따르는 누군가를 착취해서는 안 될까? 물어 마땅해 보이는 이런 질문들이 컬트의 지도자들에게는 떠오르지 않았거나 떠올랐어도 금세 무시된 것으로 보인다.

나도 한번 자문해 보았다. 나의 결여들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교묘히 조작(manipulate)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어디까지 자유할 수 있나?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건 그들의 자유를 해하는 것일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종교와 신화에 관해 공부할수록, 정견(正見)이란 결국 바르게 인과를 파악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꼬아서, 과하게, 나의 필요에 맞게 인과를 추정하는 것이 아닌, 진짜 인과를 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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