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학원에서의 36시간

요리가 항상 즐거운 건 아니지만, 누군가 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건 늘 기쁘다.

요리학원에서의 36시간
Photo credit: Damien Paeng

재작년 10월, 전 직장의 매니저를 처음 실물로 뵀을 때가 생각난다. 회사 근처 스타벅스 리저브에서 아메리카노를 두 잔 사와 16층 라운지에서 대화를 잠깐 나눴다.

그날 나눈 대화 중 단 한 꼭지만이 기억난다. 매니저는 내게 커리어 골이 무언지 물었다. 만 25살을 한 달 정도 앞뒀던 나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커리어 골 같은 건 없다. 내 인생의 목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고, 커리어는 그 목표에 영합해야 하는 수단일 뿐이다. 가족이 돈을 요구하면 건강을 갈아 넣어서라도 돈을 많이 벌 거고, 가족이 시간을 요구하면 가족과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일을 할 거다. 내게 커리어 골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아빠가 되는 것에 이토록 진심인 나는 그간 '좋은 아빠 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러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올해 열심이었던 운동 및 체중 감량도 그렇고, 독서도 일면 그러했다. 지금은 잠시 멈췄지만 집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큰 건 요리다. 아내와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3~4년 전부터 유튜브를 보며 다양한 요리를 해먹었다. 어머니 생신, 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기도 하고, 수육, 냉제육같이 어려워 보이지만 쉬운 요리도 하고. 양파를 서너 시간 볶아 만든 광기 어린 카레도, 프렌치 어니언 수프나 리버스 시어링 스테이크, 직접 만든 라구를 활용한 파스타 등 양식도 종종 했다.

얼추 요리를 따라 할 수 있게 되다 보니 기본기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다. 이제 레시피가 궁금하지는 않았다. 레시피를 관통하는, 재료의 조합과 요리의 순서와 킥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본질을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