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퇴사'의 새로운 트렌드: Coffee Badging

출근 기록만 남기고 곧바로 퇴근해 RTO(Return-to-Office) 정책을 형식적으로만 충족시키는 행태.

'조용한 퇴사'의 새로운 트렌드: Coffee Badging
Photo credit: IMDB

최근 흥미로운 기사 두 개를 접했다:

두 기사 모두 이른바 'Coffee Badging(이하 커피 배징)', 곧 출근 기록만 남기고 곧바로 퇴근해 RTO(Return-to-Office) 정책을 형식적으로만 충족시키는 행태에 관해 다루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몰입은 내가 늘 관심을 두는 키워드이기도 하여 두 글을 합치고 연관된 자료와 맥락을 찾으며 한국어로 요약하고, 사이사이 내 생각을 추가해 글을 써보았다.


'조용한 퇴사'에서 '커피 배징'까지

Photo credit: https://www.gallup.com/workplace/608675/new-workplace-employee-engagement-stagnates.aspx

2023년 갤럽의 조사를 따르면, 정규직 및 시간제 직원 중 약 50%는 자기 일과 직장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약 16%는 심지어 적극적으로 탈몰입(disengage)하고 있다. 물론 2022년을 기점으로 (기업 입장에서) 더 건강한 방향으로 추세가 뒤집혔지만, 2020년에 비하면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런 통계적 추세를 반영하는 것 중 하나가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다. '최소한의 일만 하고 초과 근무 등 정해진 범위를 넘어서는 노력은 투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조용한 퇴사는 재택근무를 등에 업고 팬데믹 기간 동안 크게 유행했다.

팬데믹이 끝남에 따라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내는 RTO 정책이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조용한 퇴사는 이에 맞춰 진화했는데, 그 한 가지 형태가 바로 커피 배징이다. 커피 배징은 서두에 언급했듯 '출근 기록만 남기고 곧바로 퇴근해 RTO 정책을 형식적으로만 충족시키는 행태'이다.


고군분투하는 아마존: '직원들을 고등학생처럼 다루기'

아마존의 사례가 흥미롭다.

작년 초 아마존은 본사 직원 대부분의 주 3회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는 RTO 정책을 발표했다. 직원들은 맹렬히 반대했다. 약 30,000명의 직원이 이 정책에 반대하는 내부 청원서에 서명했다. 아마존은 정책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승진을 막는 등 강력한 대응으로 일관했고, 심지어 CEO 앤디 재시(Andy Jassy)는 정책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회사를 떠나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마존의 정책에는 허점이 있었다. 몇 시간 이상 사무실에 머물러야 출근으로 인정되는지의 내용이 없었던 것. 직원들은 커피 배징으로 이 허점을 이용했다.

최근 아마존은 커피 배징을 방지하고자 리테일과 클라우드 컴퓨팅 팀을 비롯한 여러 팀에게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 최소 2시간 이상 사무실에 머무를 것을 요구했다.

아마존 내부에서 정책의 엄격함과 모호함을 지적하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직원들은 2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이를 출근으로 여길 것인지, 사무실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추적할 것인지, 추적하는 것이 합법인지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고등학생처럼 대하면 우리도 고등학생처럼 행동할 것이다."

한 직원이 홀푸드(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으로, 아마존의 자회사)에서 출근 인증이 가능한 것을 확인하고는 다음과 같이 슬랙 메시지를 적었다고 한다: "홀푸드에 사원증을 찍고 들어가면 사무실 안 나가도 되나요?"


아마존만의 문제는 아니다

화상 회의 회사 Owl Labs의 설문 조사를 따르면,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자의 58%가 커피 배징을 인정했다.

커피 배징은 현상일 뿐이다. 그 기저에 존재하는 진짜 문제는 직원들이 자기 일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응답 참여자의 약 1/3은 15분에 한 번씩 주의가 분산된다고 응답했다. 다시 깊은 집중 상태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20분임을 감안하면, 이들은 온종일 깊은 집중 상태에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채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직원들이 배우고 성장하며 경력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때 자기 일에 몰입할 수 있을 거라 입을 모은다.


자그마한 사견

전직장에서도 RTO 정책의 시행을 놓고 왈가왈부가 많았다. 본문에 언급된 것과 비슷한 문제들도 제기됐었다. 밥 먹고 다시 집에 가면 그건 출근으로 칠 건지 등.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주의자고, 근로자의 의무는 회사가 지정한 장소에서 회사가 지정한 일을 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솔직히 직원들의 반발을 깊게 공감하지는 못한다. "우리를 고등학생처럼 대하면 우리도 고등학생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서순이 바뀐 것 같다. "당신들이 고등학생처럼 행동하면 당신들을 고등학생처럼 대할 것"의 상황 아닌가?

하지만 이건 입바른 말에 불과하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듯, 열정은 입바른 말에서 불타오르지 않는다.

<인간관계론>의 내용을 조금 더 빌려 와 보자. 이 책은 계속해서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라, 그리고 내가 바라는 바를 상대방이 자기 자신에게 설득하게끔 하라고 말한다. 회사와 직원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책을 통해 강제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회사가 원하는 바를 직원이 스스로 믿게끔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정책을 입안하고 공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방향으로의 변화가 서로에게 이롭다고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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