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게 범죄>
트레버 노아는 아파르트헤이트에 관해 말할 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두 번째 사람이 되어주었다. 그가 성장하며 직접 겪은 아파르트헤이트는 이 책에 너무나도 생생히 담겨 있다.

남아공 흑인 어머니와 스위스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태어난 것 그 자체가 범죄"였던 트레버 노아의 자서전.
역사를 잘 몰라 조심스럽지만, 홀로코스트와 아파르트헤이트는 그 잔혹함의 정도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자는 전자에 비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멀다. 당장 홀로코스트에 관련된 사람을 세 명 떠올리라고 하면 아돌프 히틀러, 안네 프랑크, 아돌프 아이히만 등이 떠오르는 반면,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해서는 넬슨 만델라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마저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굉장히 서구적인 관점과 결부된 채로.
트레버 노아는 아파르트헤이트에 관해 말할 때 내가 언급할 수 있는 두 번째 사람이 되어주었다. 그가 성장하며 직접 겪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이 책에 너무나도 생생히 담겨 있다. 몇 구절들에 밑줄을 쳐놨는데, 지금 다시 보아도 인상적일 정도의 깊은 통찰들이다. 다음이 바로 그 구절들이다:
"사람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눈 다음 서로 미워하게 만들면, 그들 모두를 아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
"그게 경찰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모두가 서로를 경찰로 의심하는 것."
"같은 언어를 쓴다는 건 '우리는 똑같다'는 의미를 전한다. 언어에 장벽이 있다면 '우리는 다르다'는 의미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들은 이 점을 잘 알았다."
"영국식 인종 차별이 “만약 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말하는 원숭이가 있다면, 그건 행여라도 사람일지 몰라”라면, 아프리카너식 인종 차별은 “대체 왜 원숭이에게 책을 준단 말이야?“라는 식이었던 것이다."
"남아공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흑인이지만, 이 자치구에 할당된 면적은 국토의 13퍼센트에 불과했다."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혹성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이 비난받아 마땅하다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이라고 배우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타인에게 저지른 짓의 결과를 보지 못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분리와 공포, 차별의 세상에서 그는 사랑을 받고 또 배우며 바른 사람으로 자랐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 중추였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혼혈인 탓에 "어디서나 누구하고든 어울렸지만, 동시에 철저히 혼자"였던 그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를 보상하고도 남을 사랑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데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곧 죽어도 교회에 데리고 나가는 것, 매질, 계부의 가정 폭력을 참는 것 등. 게다가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내가 사랑할 대상, 또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 줄 대상을 원했기 때문"에 트레버를 낳지 않았나. 나의 관점에서 그런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 또 하나의 폭력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의구심을 접었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무지한 만큼, 나는 그들이 속한 문화와 그들 사이의 유대에 관해 무지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곧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하지 않겠는가.
<태어난 게 범죄>는 시린 토양에서도 해바라기가 자라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책이다. 그 토양이 얼마나 시린지 유쾌하게 풀어나가 더욱 인상적이다. 교보문고 sam 이용권을 쓰느라 번역본을 읽었는데, 원서로 읽었으면 더 좋게 느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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