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freeze>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백예린의 <Antifreeze> 전에 검정치마의 <Antifreeze>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그전에, 작품과 작가의 관계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검정치마에 관한 논란이 있었기에. 결국 검정치마의 <Antifreeze>를 극찬할 나 자신에 대한 자기변호이지만, 내 공간이니까 평소에 생각해오던 걸 적어보겠다. 참고로 검정치마를 옹호하는 내용은 전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는 작품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에 더해 작품은 감상자 각각과, 그리고 또 사회 각각과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와 작품은 불가분의 관계가 맞다. 그러나 그건 작품의 다른 요소(음악으로 친다면 소재, 가사, 멜로디, 템포 등)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동안에는 그 작품에 전지전능하게 임재하는 신일지언정, 작품이 감상자에게 내놓아진 후로는 그저 작품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요소 각각과 요소의 총합체에서 의미를 찾고 감상을 얻어 가는 건 감상자 개인이다. 소재와 가사가 별로여도 비트와 라임이 좋으면 좋은 노래로 느껴질 수 있듯이, 작가의 가치관이 별로여도 그 작품의 다른 요소들이 괜찮다면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의 손이 닿은 다른 모든 요소들이 더럽고 역겹게 느껴진다고 말한다면, 이 역시도 존중해야 할 감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기호가 무조건 옳다는 건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옳음'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짚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 '옳음'이란, 실재하지만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는, 우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일종의 불가지론인 건데, 옳다는 게 무엇인지 확정할 수 없기에 개인의 기호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작품과 감상자가 관계를 맺듯 작품과 사회가 관계를 맺고, 또 사회와 개인이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한다. 이때 사회(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옳음과 비슷한 것'을 확정할 수 있는데, '옳음과 비슷한 것'이 존재하는 이 사회와 작품이 관계를 맺음으로써, 또 그 사회와 개인이 관계를 맺음으로써 무한정적인 상대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표현과 감상에 '이건 옳아, 이건 옳지 않아' 하는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떤 한 개인에게든, 사회에게든. 물론 사회 속에서 '옳음과 비슷한 것'이 확정되고, 이 암묵적이고 유동적인 잣대를 가지고 유연하게 판단하며 개인과 사회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생각은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옳은 게 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토대로 만든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더 큰 폭력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그런 검열이 인권과 예술과 사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검정치마의 <Antifreeze> 얘기.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 엄청났다. 도입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디 사운드, 잘 못 부르는 거 같은데 잘 부르는 기묘한 보컬,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좋은 가사. 이 가사를 5분 만에 썼다는데, 믿기지가 않는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Antifreeze>에서 제일 좋아하는 가사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런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운다는 가사도 너무 좋다. <Antifreeze>는 소재도 그렇고 가사 한 줄 한 줄도 그렇고 빙하기 속 동굴에 살고 있는 현생인류를 떠오르게 한다.
검정치마의 1집 앨범 [201]을 다룰 때 <Antifreeze>를 가장 먼저 다루지 않는 잡지는 거르기로 했다는 어떤 네티즌의 글을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사람이 전문가도 아닐 테고 그저 익명에 숨은 댓글에 불과하지만, 그 말을 듣고 크게 공감했을 정도로 <Antifreeze>는 나에게 최고의 곡이었다.
근데 그런 곡을 백예린의 목소리로 만나게 되었다. 도입부의 신스가 없어진 대신 말도 안 되는 음색으로 귀를 때리는데, 이 또한 원곡을 들었을 때만큼의 충격을 선사했다.
신기하게도, 백예린의 목소리로 듣는 <Antifreeze>에서는 위에서 꼽은 부분이 아니라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닷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이 부분이 제일 와닿는다. 원곡의 존재감을 일정 부분 지웠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보컬 역량이 대단한 것 같다.
중간중간 계속되는 변주도, 백예린의 아버님과 함께하는 코러스도 너무 좋다. <Antifreeze>를 이렇게 따뜻한 색감으로 재해석해 불러준 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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