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후기

휴식에 대해 지금의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냥 휴식 그 자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현상유지면 감지덕지고, 퇴보할 수도 있다. 발전의 발판이 되지 않을 수도, 2보 후퇴를 시작하는 1보 후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휴식이 필요할 때 휴식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행복을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휴학 후기
Photo credit: Damien Paeng

지난 4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4개월이었다. 그래서 이 감상을 꼭 글로 남겨놓고 싶었다. 일기장에 써도 되지만, 주변에 휴학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서 휴학 권장글을 겸해서 써본다.

애초에 이번 학기를 휴학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지만, 공연 준비가 바빠 휴학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공연이 끝났고, 이미 갈릴 대로 갈린 멘탈은 몇몇 크고 작은 일들 탓에 거의 소멸되었다. 그렇게 4달 하고도 꼭 이틀 전, 휴학계에 싸인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못한 채 맞은 휴식이었다.

사실 나는 이 기간을 방학이라고 여겼다. 지난 1년간 방학이 없었던 나의 첫 방학. 하지만 그래서인지 “쉰다는 것”은 마치 “글을 쓴다는 것”이 그랬듯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안했고 불편했다. 계획이 없었기에 더욱, 마치 책의 중간 한 페이지를 아무 의미 없이 백지로 채우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책도 읽고 탱자탱자 놀다 보니 그런 거 다 잊고 열심히 놀게 되더라. 그렇게 이미 계획되어 있던 제주도, 코타키나발루를 갔다 오고, 부랴부랴 계획해서 호주와 뉴질랜드도 갔다 오게 되었다.

그리고 휴학 마무리 여행으로, 일본을 가게 되었다. 무계획 익일 출발 해외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친구들이 기말고사 보면서 학기를 마무리할 때 나도 마지막 여행으로 휴학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 캡슐 호텔의 비좁은 방에 누워서 낮은 천장을 바라보며 지난 3개월간 나에게 어떤 발전이 있었나 고민하다가 문득 서글퍼졌다. 휴식에까지 계획이 필요한, 그리고 휴식 기간마저 발전의 시간으로 강박 받는 삶이 너무나 고단하게 느껴졌다. 근데 또 잊고 돌아다니고 탱자탱자 놀았다. 발병 날 정도로(실제로 족저근막염에 걸렸다).

그 고민에 대해, 그리고 휴식에 대해 지금의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냥 휴식 그 자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현상유지면 감지덕지고, 퇴보할 수도 있다. 발전의 발판이 되지 않을 수도, 2보 후퇴를 시작하는 1보 후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휴식이 필요할 때 휴식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행복을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사실 하찮은 깨달음일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장려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기에 글을 올리는 게 망설여진다. 다만, 내가 휴학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은 ‘“휴식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한 문장으로 집합될 것 같아서, 그리고 주변에 “휴식할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몇몇 있는 것 같아서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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